부자상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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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유명만년필회사 창업동인들이「기업비밀」을 미끼로 사주로부터 거액의 돈을 갈취한 사건이 있었다. 「창업」에서 「수성」에 이르기까지 18년을 두고 고노와 풍상을 함께 나누어온 전무·상무등 간부사원 7명의 소행이었다.
이들은 사내중요문건 l백여점을 복사해 놓고 무려 4억원가까운 돈을 뜯어냈다고 한다.
새삼 각박한 세태의 단면을 보는 것같아 고소를 짓게된다. 이것은 법이나 사리의 척도로만 재보기엔 어딘지 삭막한 느낌이 앞선다. 우리 시대엔 덕목도 의리도 없다는 말인가.
기원전 4세기 춘추말기의 중국엔 도둑이 들끓었던 모양이다. 난세였으니 그럼직도하다. 관서에선 밀고자를 칭찬하고 상금까지 두둑이 주며 사회의 기강을 잡으려했다.
어느날 초나라의 중신 섭공(심제량)이 공자앞에서 이런 자랑을 했다.
『우리고을엔 정직하기로 소문난 궁(궁)이라는 자가 있읍니다.
그 아비가 남의 양을 훔쳤더니 그 아들이 고소를 했읍니다.』아버지가 저지른 절도죄(절도죄)를 아들이 가만히 보고 있지않은 것이다. 공자말씀이 없을수 없다. ,『우리 고을의 정직한 자는 다르다네. 아비는 아들을 위해 그죄를 숨기고, 아들은 아비를위해 그 죄를 숨겨주느니라. 정직이란 그속에 있는 법이다.』 원문은 이렇게 되어있다.
- 부위자강, 자위부수, 직재기중의.
『논어의 자노부에 나오는 얘기다.
부자가 서로 숨기는 것(부자상암)을 공자는 천리의 인정으로 생각한 것이다. 후학들은 이명구에 주해까지 달았다. 『...고부구직이직, 재기중』-.굳이 정직을 구하지 않아도 그것이 곧 정직이라는 뜻이다.
고사에 순임금은 아버지가 허물을 저지르자 남몰래 그를 업고 바닷가에 나가 책했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 멀리 프랑스에선 밀고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다.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탈세를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발표가 있자 이런 세태가 빚어진 것이다.
물론 탈세를 미덕으로 받아들일수는 없다. 그것은 어느 사회, 어느 나라에서나 악덕이다.그렇다고 밀고까지 상찬하는 것은 인륜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수단을 가리지않고 목적만을 달성한다는 사고는 적어도 사람이 함께모여사는 사회에선 미덕일수없다. 사람의 사회에서 사람의 기기를 빼어버리면 남는것은 살벌뿐이다.
남남사이도 그렇거늘 이웃과 동료와 같은 운명체의 일원이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멸시한다면 그것은 비극을 넘어 인문파탄의 경지다. 법리나 정직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원초적인 힘은 바로 인문과인문의 관계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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