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강경파 '北 혐오' 단적으로 드러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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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행정부 내부용으로 회람시켰다는 북한 관련 비밀 문건은 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미 행정부 내 강온파의 갈등과 주도권 다툼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해석된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럼즈펠드 장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의 3자회담을 승인하기 수일 전 국방부 내부 문건을 작성, 딕 체니 부통령 등 정부 내 요인들에게 회람시킨 것으로 돼 있다. 문건의 요지는 중국과 협력, 외교적 압박을 통해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이 견해가 럼즈펠드 장관의 개인 의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내부 토론용이라는 것이 국방부 대변인의 설명이지만 국무부 등 온건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북한과의 협상론에 대한 럼즈펠드 등 강경파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문건은 짐작케 한다.

럼즈펠드는 북한과의 3자회담 발표가 나오자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더라도 북한에 줄 대가는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로 부시 행정부 내 관심은 북핵 문제로 넘어갔고, 이를 둘러싼 매파와 비둘기파의 주도권 싸움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일단 온건파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현 단계에서는 온건파가 판정승을 거둔 상태다. 부시 대통령은 20일 "미국과 한국.일본.중국 모두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과의 협상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향후 진행될 다자협상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미 행정부 내 온건파가 기대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면 이는 바로 럼즈펠드 등 강경파가 기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가면 이번 문건에서 드러난 대로 압박을 통한 북한 '정권교체(regime change)' 주장이 다시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럼즈펠드의 내부 문건에 담긴 내용은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과 배치된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공식 입장이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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