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주의에 대한 자기 옹호로 태동|동인「작가」에 대한 평론가의 견해를 보고…윤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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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사된 바로는 현재 전국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동인지는 모두 1백60종을 웃돌고 있다. 이러한 동인지의 수적 증가는 지난 70년대 말에 와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게 된 현상으로서 우리 문학사를 동인지사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때 더 없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아진다.
이들 가운데는 물론 협회 기관지 성격을 띤 것들도 몇 몇 있지만 대부분이 순수한 문학동인지라는 점에서 「동인지 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십분 알고있는 입장으로서는 경이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인 활동을 하는데는 보람보다도 고통이 앞선다. 그럼에도 많은 문학인들이 동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동인 활동을 함으로써 감당하는 고통보다 그렇지 않을 때 감당하는 고통이 더욱 크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시대에 따라, 또 개인에 따라 고통의 형질은 다른 것으로 나타나지만 근래 우리 문학(문화)의 상업주의에의 유착현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심화 일로를 걷고있어 그 독자적 기능을 잃고 따라서 문학과 삶의 원동력이라 할 내적 필연성마저 찾아볼 수 없게 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이러한 때에 모습을 보인 많은 동인지들은 자기(문학)옹호를 위한 몸부림의 결과라고 받아들여진다.
동인활동의 본령은 단순한 발표지면의 확보를 떠나 동인 각자가 나름대로의 내적 필연성을 서로 확인했을 때 가능하다는 게 상식이다. 이러한 확인은 문학(문화)을 보는 서로의 시선이 같다는 데서 출발한다. 문학이 어차피 자기 구제의 작업이고 따라서 이른바 자기동일성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일진대 이러한 작업 또한 상업주의에 오도되고 유린되어 만신창이가 된 실정이다. 여기서 동인지란 서로 내적 필연성을 확인 몇몇 사람들이 순수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유일한 공동의 장이 되는 것이다.
동인 활동의 요체는 내적 필연성의 합치와 조화에 있다. 그런 조건을 구비했다면 딱딱한 이념의 깃발을 들었을 때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경직된 획일주의에 의 위험성을 배제하면서 자기동일성의 확인과 나아가서는 인간성의 회복을 꾀하고 우리의 삶을 심화시킬 수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한 걸음 빨리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에 그릇된 소비풍조를 타고 종양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상업주의 문학은 1회성의 소비문학으로서 문학의 본질마저도 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문화가 몰지향적인 획일주의에 빠져들어 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문화의 층은 얇아져 가는데도 아랑곳없이 양산되는 통속소설의 범람은 우리를 가속도로 무력화시켰다. 여러 사람에 의해 누차 지적된 바와 같이 소비문학의 병폐는 우리의 삶 자체를 쭉정이로 만들 독소적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구나 여러 매체들의 무정견한 조장으로 말미암아 우리문학은 씨 나락마저도 까먹는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동인 활동의 수적 증가와 활성화는 어찌 보면 시대적 요청이었다.
지면 확보라는 초보적인 문제를 놓고 볼 때도 그렇다. 과거에는 1년에 겨우 한 두 편의 작품을 동인지에 발표함으로써 문학한다는 자부심을 달래야했던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 무렵만 해도 동인활동의 필요성이 그런 정도로 공공연히 치부되기도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웬만큼 지면이 확보되었을 때 1년에 한 두 편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동인지의 역할이 얼마나 뜻 깊은 것인지는 자명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가장 많은 편수의 작품을 발표하는 소설가에게 일지라도 동인지는 『가장 순결한 발표행위』의 광장으로서 훌륭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예컨대 작년에 가장 많은 편수의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집계되어 있는 유재용과 이문열은 각각 「작단」과 「작가」의 동인으로 활동하고있다). 그렇다면 동인지는 단순한 발표지면의 확보라는 데서 더 나아가 동인활동을 함으로써 배전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구실도 겸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거의 많은 동인지들이 문학에 있어서 창달이라는 쪽보다는 옹호 쪽에 치우쳐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옹호와 창달은 내포와 외연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동인활동은 옹호의 껍질을 깨고 나와 창달에 힘을 기울일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동인은 이러한 근본적인 자각 아래 감히 우리 문학의 인이 되겠다는 자세로 탄생한 것이며 점증되고 있는 서로의 신뢰에 부응하기 위해 계속 매진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필자=소설가·작가그룹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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