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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른 일없다"는건 터무니없는 거짓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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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탈주소매치기 주모자 이상훈의 자수 장소를 검찰이 사실과 다르게 발표해 검찰 내부에서도 반성론이 크게 대두.
대검은 9일 하오 『이가 검찰청 부근 공중 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어와 수사관들이 나가 연행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는 이 스스로 검찰청 수위실에 들어가 수위들이 보는 앞에서 김도언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검찰 비상망 아래 이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체 수사 총본부인 검찰 청사 안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면 체면 문제이기 때문에 밖에서 자수한 것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냐고 해석했다.
그러나 온 국민의 관심사에 이런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거짓임이 밝혀진다면 누가 검찰 발표를 믿겠느냐며 검찰 공신력을 떨어뜨린 처사라고 스스로 반성론.
탈주 주범 이상훈은 자신이 경찰관을 칼로 찌르지 않았는데도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제로 경찰관에게 칼부림을 했으나 검거되지 않은 소매치기 공범 「강현수」를 만나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고 일당을 고발한 이·김모씨 등을 혼내주려고 도망했다고 주장.
자수 직후 서울 구치소에서 검찰의 조사를 받은 이는 『지난 1월2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 호텔 앞에서 경찰관에게 칼질을 했다해서 구속된 후 경찰∼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나 자신은 물론, 가족들이 진정과 탄원을 거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재판 과정에서도 범인으로 몰아붙이는 듯해 억울함을 밝히려했다』는 것.
이는 자신의 재판을 처음 맡았던 판사는 누명을 썼다는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듯 했으나 지난달 판사가 바뀌면서 자신의 진술을 믿으려 하지 않고 전과자라고 냉대해 도저히 억울함을 풀 수 없을 것 같아 달아났다고 했다.
이들은 또 『우리가 도망간 것이 그렇게 크게 보도되고 사회 문제가 될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교도관이나 외부에 있는 가족과는 전혀 모의한 사실이 없다고 공모 사실을 부인했다.
이들은 또 탈주 때 법원 담 밑에 놓여있던 사과 상자는 전혀 모르는 것으로 사과 상자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것을 밟고 담을 넘은 기억도 없다고 했다.
이상훈 등 탈주범 3명을 지난 1월24일 서울 이태원동 116 해밀턴 호텔 앞에서 검거한 남대문 경찰서 김명호 (37) 김송원 (28) 형사는 이의 경찰 상해 부인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두 김 형사는 11일 검거 당시 해밀턴 호텔 앞 주차장에서 격투를 벌이다 김명호 형사가 이형기의 칼에 왼손 인지와 손바닥에 길이 5cm쯤의 상처를, 김송원 형사는 이상훈의 칼에 왼손 중지·약지·새끼손가락 등 3개를 찔려 전치 16주의 중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김송원 형사는 그때 다친 상처로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손가락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다.
이상훈 등의 경찰 상해 부인 주장은 자신들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발뺌이라고 두 김 형사는 주장했다.
경찰은 또 격투 당시 현장에는 이상훈 등에게 자동차를 빌려줬던 안모씨 (43)와 원모씨(38) 등 2명이 있었으며 이들도 경찰의 피습 과정을 경찰에서 증언했다.
김 형사 등은 1월24일 해밀턴 호텔 주차장에서 빌어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바꾼다는 정보에 따라 호텔 앞 경비실에서 잠복 중 바꾼 자동차를 우홍식이 운전, 떠나려는 것을 덮치다 이들의 반항으로 격투가 벌어졌다.
김명호 형사는 잠복하던 경비실에서 나가자 눈치를 챈 우와 이상훈이 차에서 내리며 바바리 안 주머니에서 칼을 뽑으려고 하여 재빨리 붙잡고 늘어져 주차장에서 5분 동안 서로 딩굴며 격투를 벌였다.
김 형사 등은 격투 시작 전에 이상훈이 『나와라. 덤벼라』고 소리치자 부근에서 숨어 망을 보던 이형기 등 2명이 가세했다면서 김명호 형사는 이형기가 휘두른 칼을 붙잡다 다쳤다.
당시 이상훈은 격투 도중 경찰관을 찌르려던 다른 소매치기 일당의 칼에 오른쪽 허벅지를 길이 5cm가량 찔려 피를 흘리며 달아날 정도로 칼부림을 벌였다고 경찰은 말했다. 이상훈은 그 자리에서는 달아났으나 이틀 뒤 인천 올림포스 호텔에서 부평 경찰서 경찰관들에게 붙잡혔다.
김명호 형사는 이상훈·우홍식이 부평서에서 『남대문서로는 데려가지 말아달라. 그때 형사들을 만나게 되면 우리가 죽게 된다』고 사정한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탈주범들의 보복 대상자로 알려진 이재술씨 (36)는 자신은 밀고자가 아니라 노은상으로부터 피해를 본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씨에 따르면 노는 지난해 7월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폭력배로 쫓겨다니다가 12월5일 경찰에 구속됐는데 노가 경찰 진술에서 소매치기 행각을 벌일 때 자신에게 장물 처분을 의뢰했다는 허위 진술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12월19일 영등포 경찰서에 장물 취득 혐의로 억울하게 구속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범인 노는 자신의 밀고와는 전혀 관계없이 계엄령 선포 이후 군경 합동 단속에 걸려 검거됐다고 말했다.
탈주한 소매치기 3명이 자수할 때 잡은 대검중앙수사부 3과장 김도언 부장 검사 (41)는「성깔 있으나 인정 많은」 검사로 이름나 있다.
『구치소의 다른 죄수들과 얘기하던 중 김 부장 검사에 대한 인상깊은 말을 듣고 김 검사에게 자수했다』는 주범 이상훈의 말처럼 김 검사가 전부터 범인들과 아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말이다.
김 부장 자신도 『왜 그들이 내게 자수했는지 알 수 없다』며 얼떨떨해하면서도 「생애 최고의 날」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범인들이 검사에 자수한 것이지 굳이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김 부장은 자수한 주범 이의 태도에서 『세상에 악하기 만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탈주 후 주범 이상훈은 도피처인 우이동 레인보우 산장에서 산장 주인인 수필가 김모씨와 차원 높은 문학에 관한 얘기를 나눴으며 『수필 문학』 잡지를 선물 받아 자수 할 때까지 이 책을 들고 다녔다.
이는 복역수 문학 경연 대회에서 수필로 법조부 차관상을 받은 뒤부터 주위에서 문학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며 수필을 쓰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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