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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따라 느낌 다른 시조…2∼4번 읽어야 겨우 몇 편 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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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훌륭한 시조란 정서와 사상, 그리고 음률이 잘 조화되어 있는 시를 말한다. 그리고 한편의 시는 작자의 분신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어느 시, 어느 한 구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선자의 어려움이 있다.
매회 40∼50의 작품이 응모되고 그 가운데 몇 편을 골라 발표하게 된다. 그 선별 작업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조를 대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읽을 때와 낮에 읽을 때, 그리고 밤에 읽을 때 그 시들은 새로운 느낌으로 전달되어 온다. 따라서 선자는 가장 충실한 독자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3, 4독을 거쳐 몇 편을 고르게된다.
최광순 씨의『물레』는 물레 잣는 할머니를 통하여 인생을 조명해 본 작품으로 시상의 전개와 언어의 구사가 무리 없이 이루어진 시조다. 많이 써본 솜씨가 엿보이나 가능하면 두 수로 응축시켰으면 더 좋을 듯하다. 시조의 음률은 물레 잣는 동작과 일치한다. 2, 3회 늘리고 3, 4회 째 휘감는 동작이 그것이며 다듬질에서도 3, 4회 째 강하게 치는 음박을 들을 수 있다.
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음박이요 손짓이다. 학설에 따르면 성리학자들의 성향에 의하여 시조의 음률 형식이 이루어졌다고 설하지만 그 설은 우리 민족의 심성으로부터 시조의 음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작자는 이를 잘 체득하고 있는 것 같다. 이수미 씨의『아카시아 꽃』은 결구인 종장이 뛰어나며 고명신 씨의『홍매』도 종장의 홍매와 젖꼭지의 이미지 결합이 무리가 없다.
신명희 씨의『강바람』은 어떤 사유의 세계를 노래한 작품으로 언어감각만 살리면 좋은 시조를 쓸 수 있을 것 같으며, 김윤호 씨의『박꽃』은 고투를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으나 시작의 노력이 엿보인다. 권석하 씨의『갈대』도 전회의 작품과 더불어 씨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단단한 시조다.
독자들의 계속적인 정진을 기대하며 사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김제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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