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정은 위원장의 유엔총회 연설을 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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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맞춰 이달 중순 뉴욕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의 외교총책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것은 15년 만이다. 이 외무상은 기조연설까지 신청했다고 한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이후 북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모습을 드러낸 건 92년과 99년 두 번뿐이었다.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특히 지난달 중순 미 정부 당국자들이 군용기 편으로 평양을 극비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방미 계획이 공개됨으로써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고 있다.

 레이더에 나타난 항적(航跡)을 부인할 순 없다는 점에서 미 당국자들이 지난달 16, 17일 평양을 방문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것이 이 외무상의 방미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북 외무상이 유엔총회 참석만을 위해 미국에 간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안 맞는다. 그의 방미에 맞춰 북·미 고위급 대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이 외무상의 뉴욕행을 계기로 북·일에 이어 북·미 간에도 대화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차제에 우리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유엔총회에서 직접 연설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유엔총회장 단상은 회원국이 대표 연설자로 지정한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유엔총회에서 연설했다. 김 위원장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내용은 달라야 한다. 차베스는 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사탄에 비유하며 그가 있던 자리에서 유황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미 악마화된 그의 이미지가 더욱 나빠졌음은 물론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밝히는 기회로 유엔총회 연설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설을 통해 핵과 미사일,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개혁·개방을 바라는 전 세계의 기대에 부응한다면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북·미 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편적 언어로 대화가 가능한 정상적인 지도자로 커밍아웃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한 지 2년8개월이 지났다.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천명한 그는 핵무력은 확보했으니 민생에 매진하겠다며 경제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13개 경제특구를 지정하는 등 북한식 개방에도 적극적이다. 하지만 그를 악마화하고 희화화하는 국제사회의 불신과 냉소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면 어떤 노력도 결실을 거두기 어렵다. 지금 북한에는 체스판을 바꾸는 외교적 상상력과 아울러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미·이란 관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북한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