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먼디 사우드」란 말 새삼 실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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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젊음이라는 것이 나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훈으로 다시 얻은 27일 하오 2시의 세종문화회관을 잊을 수가 없다. 「프로코피에프」고전교향곡 D장조, 「스트라빈스키」발레 조곡『불새』, 그리고「차이코프스키」교향곡 제5번이「유진·오먼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에 의해서 연주되었던 것이다.
몸을 야단스럽게 움직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지휘봉 사용의 명수「오먼디」를 두고 80을 넘긴 고령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생각이다. 음악이 젊어도 아주 많이 젊다는 이유에서다.
규범이니 전통이니 하는 것들을 초개같이 내버리면서 오직 자기의 직관에만 몸을 맡기는「프로코피에프」에 의해서「모차르트」나「하이든」의 표피구조가 재생되고 있는 고전교향곡의 진면목을「오먼디」는 자기의 지휘봉 위에 담아도 잘도 담는다. 「오먼디 사운드」라느니「필라델피아 사운드」라느니 하는 말이 때가 묻은 말이라서 필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의 실연을 직접 듣고 있노라면 그 말이 때묻은 말이기는커녕 말의 몸체가 목욕을 해도 세번은 했을 정도로 깨끗한 말로 들린다. 특히 현의 소리는 정말 아름답다.
두번째로 연주한『불새』조곡에서 느낀 점은 문자 그대로 희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오먼디」의 손을 거치면 애초에 접목이 될 수 없는 나무끼리라도 쉽게 접목이 될 수 있게 나무자체의 생리가 변해버려서 그런지, 종적으로 떨어져 있는 음들이나 횡적으로 떨어져 있는 음들이나 간에 그의 지휘봉을 거치기만 하면 모든 음들은 음악적 맥락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서 잘 맞아떨어진다. 그의 지휘봉은 아마 음악을 위한 지남철인 모양이고, 또 필요하면 그 지남철이 수십 개의 작은 지남철로 둔갑을 하는 요술방망이인 모양이다.
음악가가 가질 수 있는 꿈을 송두리째 상기시키고 또 우울증이나 우수의 정이 철철 넘치는 선율의 향연이 이날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차이코프스키」교향곡 5번에는 구슬픈 선율이 많다. 객석 쪽으로 가끔 비치게되는「오먼디」의 옆얼굴은 음악이 마련하는 최대의 기쁨과 슬픔의 반영, 그것이었다. 음악에의 사랑과 기쁨의 내용을 음으로 형상화시키기 위해서 자기 감정을 통제하면서 가볍게 몸을 떨고 있는「오먼디」의 무언의 웅변이 시사하는 의미는 깊었다. 28일과 29일이 아직 남아 있다. 그의 무언의 웅변을 들을 기회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음악평론가>
이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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