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칭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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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리그 평균구속보다 상당히 많이 떨어질 경우에는 결국 선발투수는 어렵고, 중간계투요원 이상은 할 수 없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투수가 던지기 나름이다.

극단적인 경우로 일본에서 2002년을 끝으로 은퇴한 호시노 노부유키 (한신)같은 스네이크볼 투수도 당당히 마운드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호시노 노부유키는 125km 전후의 직구에 110km대의 포크볼, 80~90km대의 슬로커브를 뿌리는 좌투수였다.

74kg으로 야구선수로는 다소 왜소한 체격에 실업야구 수준의 느린 공을 던지던 호시노의 성공비결은 바로 완급조절에 있었다.

공이 타자들의 빠른 스윙스피드를 도저히 ''따라잡지 못해'' 우타자들이 잘 맞은 3루쪽 파울볼을 많이 때려내는데, 결과적으로 카운트를 잡는데는 최고였다. 그런 식으로 우타자 안쪽에 공을 많이 붙여나가면서 파울을 유도하다, 바깥쪽 포크볼이나 커브로 삼진 및 범타를 유도한다.

호시노는 던지는 팔을 바짝 오므려 구속 늘리기를 의도적으로 포기한 대신 구질 노출을 하지 않았고, 체인지 오브 페이스가 상당히 뛰어나 구속은 느려도 페어구역 안으로 떨어지는 잘 맞은 타구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투구패턴으로 그가 일본프로야구에서 거둔 통산승수는 176승이나 된다. 호시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타자를 잘 잡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서있는 투수의 좋은 예다.

145km이상의 빠른 직구와 낙차 큰 변화구만이 일류투수의 필수요건은 아니다. 두 세가지 구질을 뿌려도 확실히만 구사하면 10년 동안 150승을 거두는 투수가 될 수도 있다. 다섯 가지 공을 3,4가지 앵글에서 던져도 확실한 자기 공이나 제구력이 없다면 발전이 없다.

90년 요미우리에 각광을 받으면서 입단한 강속구투수 기다 마사오는 당시 160km를 던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160km를 던지면 나중에 힘이 떨어져서 150km의 구속을 유지할 수 있고, 나중에 좀 더 힘이 떨어진다 해도 145km대의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요미우리의 1루수였던 고마다는 "그렇게 무리해서 강속구를 던지면 150km로 구속이 내려가기 전에 네 어깨가 작살날 거야"란 충고를 해 주었다.

결국 강속구에만 의존하던 기다는 프로데뷔 당시 10승을 올린 후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1999년 메이저리그에 진출, 디트로이트에서 활동했다. 빠른 공만이 최고라고 믿었던 기다는 성적도 신통찮았을 뿐만 아니라 코칭스탭으로부터 "프로야구계에서 10년 가까이 투수를 했던 선수가 피칭법에 대해 이렇게 모르는 건 처음 본다"는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처음에 강속구투수라고 해서 몇 년 후까지 랜디 존슨, 커트 쉴링, 로저 클레멘스처럼 빠른 구속을 계속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젊었을 때처럼 연신 강속구를 뿌리지 못하는 날은 대부분의 투수들에게 찾아온다.

그들은 그 전환기에 시련을 겪지만, 그 중 영리한 투수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패스트볼로 상대 타자들을 윽박지르다가 컨트롤투수로 변신한 좋은 예는 85년 캔자스시티 시절 사이영상 수상자인 브렛 세이버하겐, 좌완투수 스티브 에이버리, 지미 키, 그리고 일본엔 구와다 (요미우리), 한국의 송진우 등이 있다.

문현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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