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조교생활…담배 심부름도-장충식 단국대학교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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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민학교로부터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근20년간 수학한 끝에 겨우 얻은 직업이 대학의 조교였다. 20년간 투자한 학자금과 그 동안 쏟은 정력과 시간을 합친다면 태산을 만들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대학원을 마칠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 조교라는 직업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었다.
대부분의 조교들이 무급조교였으며 유급조교라도 한달에 받는 월급은 겨우 몇권의 책을 살수 있는 정도였다. 반면 조교가 하는 일이란 다양했으며 대학에서 궂은 일은 도맡아하는 것이었다.
교수와 강사의 담배심부름으로부터 학생들의 출석 점검과 문서 수발, 채점표작성을 비롯해서 교수들이 출강하는 대학들을 돌아다니면서 강사료를 거둬오는 일까지 도맡아야만 했었다 가장 힘겨운 일이란 시험기간에 교수를 대신해서 하루종일 시험감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을 몇 년을 하고도 시간 한 강좌를 얻는 일도 가뭄에 콩나기처럼 힘들었다.
야간부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 대신 시험감독으로 들어갔다. 한 귀퉁이에 앉은 만학의 노 학생의 행동이 매우 수상쩍었다 직감적으로 커닝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학생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의 시선과 학생의 시선이 맞 부닥치는 순간, 학생은 몹시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이 무슨 기이한 운명의 장난이냐! 그 학생은 다름 아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바로 옆반 담임선생이었다. 학생들에게 호랑이선생으로 알려졌던 무섭고 엄격했던 그 선생님이 만학의 대학생이 될 줄이야 누가 상상할 수 있었으랴. 시험지를 빼앗으러 갔던 나는 무언의 미소로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만학의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간 후에는 다시는 만학의 선생님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것은 영원히 덮어 두어야할 비밀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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