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고교 질적 평준화 .안돼|대도시 학생들 더욱 불리|비중 높아진 대입 내신 문제점과 개선 방향등을 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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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입시의 내신성적 반영률이 올해의 20%에서 내년에는 30%이상으로 높아지자 같은 급우간의 경쟁의식도 치열해 가고있다. 일요일인데도 각 고교도서실은 학생들로 초만원을 이루기 일쑤다. 고교생들의 향학열이 모처럼 교내에서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의식은 벌써부터 비교육적인 부작용도 낳고 있다. 모처럼 교내로 수렴되는 고교생의 학구열을 교육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내신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등을 알아본다.

<내신의 위력>
올해 서울대법대 예상 커트라인은 예시성적기준 3백6점선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합격선 이었다. 모집인원 3백64명에 5백명이 지원했으나 모집정원과 같은 예시성적석차 3백64등까지 3백6점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모집정원에서 20명이 미달이었다. 전체지원자중 예시 3백6점이상자 20여명을 비롯, 모두 1백50여명이 제2지망으로 옮긴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3백6점이상의 고득점자가 옮긴 것은 내신성적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적어도 서울대법대를 지망한 학생이면 내신은 대부분 만점일 것으로 짐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예시 1백84점을 얻은 예시턱걸이합격자가 서울대법대에 합격하는 이변을 낳았다.
이것이 금년 입시에서부터 변수요인으로 등장한 내신의 위력이다.
서울대는 금년입시에서 내신 반영률을 22·7%,등급을 10등급으로 구분, 등급간의 교과성적격차는 2·7점이었다. 얼핏보아 별 것 아닌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입시에서의 1점차란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높아진 비중>
대학입시총점중 내신성적반영률은 금년의 20%이상 50%까지에서 내년에는 30%이상 50%까지로 하한선이 10% 높아졌다.
내신반영률이 20%일때엔 총점은 4백25점으로 학력고사 3백40점에 내신 85점, 30%일때엔 총점은 4백85·7점으로 학력고사3백40점, 내신이1백45점·7점이 된다. 다시 말해 내신반영률이 20%에서 30%로 높아짐에 따라 점수는 60·7점이 늘어난다.
문교부는 반영비율이 이처럼 높아지자 등급간의 성적격차를 줄이기 위해 등급을 10등급에서 15등급으로 세분했다.
등급간격차는 올해와 같이 10등급에20%를 반영할 때엔 2·3점이지만10등급에 30%를 반영하면 3·9점으로 늘어난다. 문교부는 이 같은 지나친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등급을 15등급으로 세분한 것이다.
그러나 15등급에 30%를 반영한다해도 등급간격차는2·6점이 돼 결국올해 보다는 0·3점이 높게된다.
고교의 질적 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등급간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짐에 따라 비교적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려있는 대도시 고교생들은 지방고교나 야간고교생들에 비해 더큰·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게됐다. 거기다 10등급으로 구분할 때면 교내석차가 30%안에들면 4등급을 받을 수 있었으나 15등급으로 세분하면 6등급으로 떨어져 그만큼 점수에 손해를 보게된다. 이 바람에 학생들은 같은 급우간에 치열한 등급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됐다.

<변모하는 교육현장>
경쟁의식이 높아지자 급우간은 물론, 사재간의 관계도 팽팽한 긴장관계로 치달을 조짐이다.
내신성적의 위력을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지난해 2학기까지와는 달리 올해 새 학기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져가고 있다. 학생들간에 어떤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집단적인 사고보다 개인주의 의식이 짙어지는 것 같다는 것이 일선교사들의 지적이다.
특히 학생들은 석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교사들은 조그만 약점이라도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
최근 중간고사를 치르고있는 서울시내 일부고교는 그것이 비록 교내시험이지만 국가시험과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학년별로 철저한 공동출제에 공동채점 등은 이미 지난 학기부터 시작했지만 S고교등은 이번 중간고사부터 컴퓨터를 도입, 채점에 공정을 기하고있다.
또 컴퓨터가 없는 학교는 시험지의 이름란을 가려서 철한뒤 2명의교사가 1장의시험지를 2중으로 채점한다. 또 채점이 끝난 뒤엔 다른 교사들의 재검. 3검과정을 거친다.
K고교등은 시험감독의 감독태도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소지가 있다고 3개반 학생을 시험때면 혼성하는가 하면 M고교등은 커닝방지를 위해 1, 2, 3학년을 적어서 시험을 위한 반편성을 하기도 한다. 문제도 굉장히 신중을 기해 출제한다. M고교 P교사는 혹시 시험문제가 학생 중 누구나 잘 아는 문제라는 뒷말을 들을까 우려, 40문항을 만드는데 2일간의 휴일을 온통 소비했다고 말했다.

<문제점>
학생들의 학구열이 높아지고 교내시험의 신중한 출제와 공정한 채점 노력은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학교측이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시험문제가 과거와는 달리 객관식일변도다.
○×식파 사지선다형이 조장되고 주관식의 서술형문제는 아예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교내시험조차 대학입학학력고사와 같은 셈이다.
중등교육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판단력이나 사고력 또는 이해력이나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일은 아예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일선 중등교육책임자들은 이 때문에 학생들의 사고가 단순화되고 경박한 인간으로 자라지 않을까 크게 우려한다.
모두가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보기때문에 다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협동심배양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서울Y고교 3학년 담임 L교사는 학생들의 선의의 경쟁의식은 좋지만 경쟁이 지나쳐 급우들끼리 노트한권 돌려보기를 꺼리는 학생까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재관계가 현저히 각박해져 가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주지 않는가 라는 기대를 하는 것 같고, 교사는 제자들의 눈초리를 점수와 관련시켜 그야말로 객관적으로만 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을 객관화된 대상으로 대할때 벌써 교육은 불가능해진다고 한 고교교장은 우려했다.

<개선방향>
내신성적반영은 과외해소와 함께 고교교육의 정상화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전국고교의 질적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반영율을 30%이상으로 높인 것은 성급한 조치였다는 것이 일선교사들의 지적이다.
고교평준화가 실질적으로 실현될 때까지는 대학마다 각 고교졸업생의 입학 후 성취도를 평가 고교내신성적에 차등가중치를 두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그럴 경우, 교내경쟁과열의 요인이 되는 등급세분화가 완화되고, 적성등을 고려한 고교에서의 진로지도도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내신성적을 점수화하지말고 주관적인 추천식 평가로 바꿔야한다는 장기적 개혁안도 있다. 내신성적을 1백%반영하더라도 점수화를 피할 경우 주관식 평가가 가능해지고 고교교육은 흔들리지 않고 비율이 높아진 만큼 오히려 충실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A대학의 B학과가 대학교육을 받는데 필요한 고교과정이수기준을 제시하고 일정수준이상의 성적을 요구한다는 기준을 미리 제시해놓으면 무조건 1점이라도 더 얻겠다는 비교육적 경쟁상태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런 기준을 미리 수험생들이 알고 고교교육을 받았을경우「눈치작전」 이란 접수창구에서의 혼란도, 대학에 들어 왔을때 적성과 다르다고 좌절감를 느끼는 대학생도 훨씬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각급학교 입시제도를 포팔적으로 고려하면서 검토해 볼만한 제안이다.
이는 고교의 실질적 평준화와 평가의 신뢰성이 1백% 보강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의 시행은 어렵지만 고교와 대학이 공동 노력할 경우, 장기적인 개선방향으로 실현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 고교행정책임자들의 의견이다.
학교제도상의 각 학교 급별 단위마다 상·하급교 사이에 합의된 선발기준을 갖게되고 상호신뢰가 성립 될 때 입시부각용의 근본적 치유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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