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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서 '꽃'의 시인 김춘수 10주기 추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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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스승 김춘수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추모행사를 여는 포도밭 시인 류기봉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인의 애송시 가운데 하나인 ‘꽃’. 이 시를 쓴 김춘수(1922∼2004)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다. 그에 맞춰 고인의 문학세계를 돌아보고 생전 기억을 되새기는 조촐한 행사가 30일 열린다.

 생전 김 시인을 10년 넘게 모셨던 ‘포도밭 시인’ 류기봉(49)씨가 주도했다. 그는 1998년부터 자신이 농사짓는 경기도 남양주시 장현리의 포도밭에서 예술제를 열어 왔다. 시 낭송, 음악 공연과 함께 첫 수확한 포도를 맛보는 행사다. 스승 김 시인의 제안이었다. 10주기를 맞아 17회째인 올해 예술제를 추모 형식으로 여는 것이다.

  고인의 친필 시 습작 원고, 시인 전봉건·오규원 등으로부터 받은 편지, 대학교수(경북대·영남대) 시절 강의 노트 등 류씨가 책장 깊숙이 보관해 오던 각종 자료를 전시한다. 이 중에는 ‘무정부주의’ 등 시 전집이나 단행본 시집에서 빠진 시도 있다. 경희대 국문과 박주택 교수가 고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고, 서정춘 시인이 고인과의 인연을 털어놓는다.

 노향림 시인은 헌시(獻詩) ‘대여 김춘수’를 낭송한다. ‘거친 삶일수록 시는 살아 숨 쉬어야 한다는/그 말씀 잊지 않았습니다’라며 고인의 가르침을 떠올린 후 ‘선생님이 서 계시던 그 자리엔 선생님의 시가 걸려/펄럭이며 우리 곁에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라며 시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생전 김 시인은 노씨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87년 친필 시 한 편을 선물했다. 제목은 ‘석류꽃 대낮’. ‘어제와 오늘 사이/비는 개이고/구름이 머리칼을 푼다./아직도 젖어 있다./미류나무 어깨 너머/바다/석류꽃 대낮’이 전문인 짧은 시다. 이미지가 선명하고 여백이 있어 산뜻하다. 노 시인으로서는 27년 만의 답시인 셈이다.

 류씨는 8250㎡(2500평)의 포도밭 농사를 유기농으로 짓는다. 예술제는 남양주시 지원을 받는다. 행사 현장에서 시식용 포도를 구입할 수 있다. 010-3346-2859.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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