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재처리" 파문] 美 강온파 "취소" "개최" 격렬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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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이 이번주(한국시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예정인 북한.미국.중국 간의 3자회담 참석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회담 개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북한이 핵 연료봉 재처리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19일 "부시 행정부 당국자들이 베이징 회담의 전망과 성과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고 전했다.

그동안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은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회담을 여는 것 자체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런 마당에 북한의 성명까지 나오자 "이런 정권과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한다는 거냐"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반면 국무부는 "일단 만나 진의를 확인해 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성명 파동이 터진 18일 이례적으로 정례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대신 기자들과 만나 "베이징 회담과 관련,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말했다. 회담 취소나 연기 등이 결정된 게 없다는 의미다.

미국을 방문 중인 외교통상부 이수혁 차관보가 국무부의 제임스 켈리 동아태차관보를 만나고 난 뒤 "3자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대북협상을 주도하는 국무부로서는 북한이 핵 재처리를 시사했다고 해서 이미 예정된 3자회담을 거부하기가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3자회담 자체가 일단 협상하는 데는 아무런 전제조건을 달지 않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국무부는 대신 회담에 참석하더라도 국방부 등 강경파의 분위기를 의식해 초기부터 북한에 더욱 엄격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회담 참석 여부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21일(미국시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언론들은 북한이 실제로 핵 재처리에 들어갔다는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의 성명은 자신들의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한글 성명과 영문 성명의 내용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 혼선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런 속셈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북한의 성명이 협상용을 넘어 이라크전 이후 북한의 절박하고 강경한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란 시각도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19일 북한의 나진.선봉지구를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말을 인용, "북한 주민들은 오로지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사진 설명 전문>
미국의 상업위성 회사인 디지털 글로브가 지난 1월 28일 촬영했던 북한 영변의 핵 재처리 시설. 재처리 공장과 연결된 석탄보일러 시설이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어 북한이 핵 재처리 공장 가동을 염두에 두고 관련 시설을 시험가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디지털 글로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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