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창하던 사업도 버리고 「모나리자」와 함께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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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여자를 알려면 함께 살아봐야 한다』-. 열렬한「모나리자」팬인 「레옹·메퀴자」옹(70)은 「모나리자」와 함께 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의 관리인이 됐다
「메퀴자」옹이「루브르」박물관의 관리인으로 들어간 직접적 계기는 10년 전「모나리자」 관리 소홀로 파손위험』이란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어릴 때부터 「모나리자」광이어서 한 주일에 하루 이틀은「루브르」에서 살았던 그에게 이 같은 기사는 큰 충격이었다고.
잡화도매상으로 꽤 번창하던 사업과 친지들의 만류도 마다하고 「모나리자」담당관리인이 됐다. 그 동안 사회적 지위의 실추,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검은 제복에 흰 장갑차림으로 온종일 「모나리자」곁에서 지냈다.
그의 일과는 아침8시에 출근,「모나리자」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됐다. 곧 몰려올 관람객 정리,「모나리자」에 관한 설명, 질문에 답하는 것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으로 여겼다.
그는 스스로 「모나리자」의 연인, 대변인, 신탁자. 마부라고 믿었다.
간혹 『명화를 관리하는 사람은 보수를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같은 명예가 주어진데 감사해야된다』고 말한다.
「모나리자」곁에서 그는「히로히또」 일본천황, 「환·카롤로스」「스페인」국왕, 「지스카르」대통령 등 유명인사는 물론 별의별 관람객을 다 만났다.
어떤「이탈리아」관람객은「모나라자」의 소유권이 자기나라에 있다고 주장, 반환을 요구하는가하면 달러 다발을 꺼내든 미국관람객은『하우·머치』(얼마냐)하며 달려들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을 달래는 일이 그의 가장 큰 고역이었다.
어떤 사람들은「메퀴자」옹에게 심술궂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 주장대로 「모나리자」가 여자 아닌 남자라도 계속 그를 사랑하겠는가?』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같았다.
『「모나리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하나의 그림일 뿐이다. 또 어디서나 우리들이 만날 수 있는 얼굴이다. 다만「모나리자」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표정이 변하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우리 영·혼의 거울이다』고.
「메퀴자」옹이「모나리자」에 몰두해도 부인은 질투를 하지 않는다. 그녀도 남편만큼 「모나리자」를 좋아한다. 화가인 부인은「모나리자」와 관리인 남편을「모델」로 41점의 작품을 그렸다.
얼마 전 정년퇴직,「모나리자」곁을 떠나게 된 「메퀴자」옹은 주간지 「르·피가로·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서로 만날 기회가 줄었다. 그러나 우리 둘의 「관계」는 영원할 것이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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