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역사 직시해야 하나, 한국도 고집스럽다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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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최승식 기자]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한·일 관계가 풀리려면 먼저 가해자인 일본이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무 대책 없이 장기간 일본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한국에 대해서도 너무 고집스럽다(stubborn)고 생각하고 있다.”

 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22일 “현재 한국 외교는 고차방정식이라고 할 만큼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 방정식을 풀 단초는 한·일 관계 개선이란 게 미 싱크탱크 대표들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미국 빅4 싱크탱크를 가다’ 시리즈(본지 8월 19·20·21·22일자 8면)를 마무리하며 박 전 위원장으로부터 한국을 보는 워싱턴 시각을 들어봤다. 박 전 위원장은 워싱턴 내에 ‘한·일 갈등이 한·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이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것은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차원의 걱정”이라며 “일본은 ‘한국이 이미 중국의 궤도에 올라가 있다’는 식으로 미·일 대 한·중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박 전 위원장은 “아베 정권 출범 후일본이 워싱턴에 한 달 평균 3명 정도 사람을 보내는 등 전에 없이 로비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며 “한국 역시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야 하며, 미국민과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공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일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보다 앞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의 소위 고노담화 검증 시도는 자충수라는 시각이 우세했다고 박 전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워싱턴이 주목하는 것은 어쨌든 일본이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 것”이라며 “가장 많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국가 한국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일본이 어떻게 아시아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겠느냐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이어 “우리는 미·중 관계가 조화로울수록 국익에 보탬이 되고, 일본은 반대로 미·중이 대립할수록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역시 미·중이 건설적 파트너십을 만들어가는 게 이익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주목할 점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함께 양극화 구도로 세계질서를 움직일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4대 싱크탱크 책임자의 중국에 대한 시각은 다소 엇갈리긴 했지만, 중국을 어느 정도 견제해야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만은 일치된 생각이었다”고 했다.

 ‘전략적 인내’로 대변되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한계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박 전 위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전략적 인내의 맹점은 북한이 먼저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기만 기다리는, 목표 시한이나 계획이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라며 “전략적 인내는 사실 ‘전략이 없어 인내하는 것’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런 상황일수록 북핵 문제의 당사자로서 한국이 주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며 “대북정책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자신감 있는 전방위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유지혜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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