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인민독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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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것은 마치 공산주의 깃발에서 붉은 색을 빼버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갖게 한다.
상해에서 발간되는 일간지「문회보」는 최근 중공의 새 헌법이 『「프롤레타리아트」독재』라는 말대신에 『민주인민독재』라는 새용어를 삽입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것은 바로 중공헌법 제1조에 있는 문구다.
『「프롤레타리아트」독재』란 말은 원래 독일의 사회주의자「W·바이틀링」,「프랑스」 의 「L·A·볼랑키」등에 의해 쓰여진 용어였다. 그리나「마르크스」와「엥겔스」가『공산당선언』(1848년)에 그 용어를 담고 나서는 공산주의의 대명사처럼 쓰여왔다.
그러나「레닌」은「마르크스」와「엥겔스」가 주장한「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조건에 『외적이나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추가했다. 그 뒤를 이은「스탈린」은 바로 이것을 위해 『강고한 정치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혹독한「스탈린」독재시대를 연출했다.「마르크스」나「엥겔스」가 지하에서 눈을 뜬다면 통탄할 일이었다.
그러나「후루시초프」는「스탈린」의 바로 그런 악명에서 벗어나기위해『전인민적 국가』 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의「이론」에 따르면 소련에서는 이미 사회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공산주의의 전면적 건설기에 들어섰기 때문에「프톨레타리아트」독재를 필요로 하는 제조건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은『전인민적 국가』로 전화되었다고 했다. 소련마저도「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말을 버린 것이다.
중공의 모택동은 이런 소련을 수정주의자나 이단자로 매도하며 한편 유소기일당을 궁지에 몰아넣는 방편으로 오히려「프롤레타리아트」독재를 강화했다. 그러나「4인방」체체가 실각하면서 중공마저도 세상이 바뀌어지기 시각했다. 1978년 3월 제5기 전인대가 채택한 신헌법이 그것이다.
사법권을 행정권에서 독립시키고, 사법제도도 정비해「인민」의 권리와 의무를 명문화하는 시늉을 냈다.
한편「문화혁명」의 색채를 일소하고 법치적 색채를 가미했다.
그러나「프롤레타리아트」독재를 폐기할 정도로 그 무렵의 화국봉 체재가 확고하지 못했다.
이번 『민주인민독재』는 바로 그 「신헌법」의 상징적 용어로 비로소 채택될 모양이다.
흥미있는 사실은 이제 어느 공산국가도 피로 얼룩진「프롤레타리아트」독재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러코뮤니즘」을 표방하는「이탈리아」나「스페인」의 공산당은 아예 그런 용어를 강령에서 빼버렸다. 일본이나「프랑스」의 공산당도「독재」라는 말대신에 기원전5세기 고대「로마」의 용어인『집정』(dictature)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공산주의의 독아가 숨어있는 것을 넘겨버릴 수는 없다. 용어의 변색은 「코뮤니스트」들의 흔히 있는 「프로퍼갠더」이지 진심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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