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학교의 교육환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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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들어 신설된 중·고교들의 대부분이 학생을 받아놓고도 수업할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문을 열어 신입생들이 불편을 겪는 등 갖가지 부작용을 빚고 있다.
서울의 경우만 보아도 15개의 신설 공립중학교의 대부분이 개학을 한 지 10여일이 지나도록 교사가 완공되지 않은 실정이며, 배치된 교사들의 일부는 정식발령이 나지않아 봉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하면 교과서 공급마저 늦어져 교과서 없는 수업을 하는 학교들이 있다.
거의가 남녀공학인 신설교들은 변소 등 부대시설의 미비나 공사장 소음으로 불편을 겪고 있고 그 중에는「더부살이」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기 때문에 대수로울 게 없다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기초교육분야에서 중학교육과정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추어 일선교육 행정기관의 행정소홀로 이같은 시행착오가 해마다 되풀이 되고있다는 것은 범연히 보아 넘길 일 같지가 않다.
물론 문교당국으로서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현행 예산회계법상 학교신설에 따른 예산이 배정되어 정작 공사가 착수된 것은 작년 10월쯤이 된다. 시간이 촉박한데다 서울처럼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신축부지의 매입에서부터 교사 및 부대시설의 완공까지, 또는 재원을 확보하기까지 여러가지 예상못한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연도별로 학생수의 자연증가에 따른 학교나 학급의 증설폭은 몇년전에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고 그에 대한 대응책도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수립될 수 있는 일이다. 공립중·고교의 신설을 위한 예산이 2년이나 3년 전에 배정된다면 최선이겠지만 현재의 법체계에 비추어 그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여건을 개선하는 일에서부터 능률적이고 능동적인 행정력을 발휘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당국은 좀더 성의를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교과서 배정이나 교사배치에서 행정「미스」가 일어난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신설학교 교사들의 일부가 봉급을 못받는 경우는 임용절차 때문이라고 하지만 행정기관이 좀더 성의를 갖고 능동적으로 대처했다면 이러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교과서는 각학교 단위로 신청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장도 없고 교사도 없는 신설학교교 과서의 수요판단은 당연히 일선교육행정기관이 대행했어야 한다. 제도에 결함이 있다면 그것을 고쳐야지 제도상의 결함만을 탓하는 자세는 온당치 못하다.
가뜩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교 신입생들이 교과서조차 없이, 또는「더부살이」수업을 받으면서 느낄 충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중등교육은 국민학교 교육의 성과를 한층 확충시켜 중견국민으로서 필요한 품성과 자질을 기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다시말해 국민학교 교육의 연장이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효율적인 관리, 보다 자상한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어떤 신설교는 엄연히 학생들을 배정받아놓고도 새학기가 다 지나 여름방학중인 8월에나 가야 준공되는 경우가 있다니 늑장행정이란 말로 얼버무리고 말수는 없을 것 같다.
기왕에 공사가 늦어진다면 시설이 되어 있는 학교에 일단 분산배정을 했다가 교사·교원 등 모든 여건을 갖춘 다음 학생을 재수용하는것도 합리적인 대응책이었을 것이다.
이 기회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당면한 교육과제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기초교육분야의 시설 등 기본조건을 충족시키는 것 이상 시급한 일은 없다는 점이다.
이번과 같은 일은 거의 해마다 되풀이 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흐지부지할 일이 아니다. 행정상의「미스」나 시행착오였다면 솔직하게 이를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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