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고층 건물 '마천루' 건설 열풍

중앙일보

입력

중국은 ‘지대물박인다(地大物博人多)’의 나라다. 땅은 넓고 물산은 풍부하며 사람은 많다는 이야기다. 그런 세상에선 튀어야 비로소 보인다. 그래서인지 ‘천하제일’이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쓰인다. 『후한서(後漢書)』에 등장하는 이 말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견줄 게 없다는 뜻이다. 천하제일의 산은 태산(泰山)이고 천하제일의 관문(關門)은 산해관(山海關)이며 천하제일의 명찰(名刹)은 소림사(少林寺) 등과 같은 쓰임새가 그렇다. 앞으로 10년 안에 천하제일의 경제력을 갖출 게 확실시되는 중국은 현재 천하제일의 마천루(摩天樓) 건설 붐에 휩싸여 있다.

마천루는 높이 150m, 층수론 50층 이상의 초고층건물을 가리킨다. 2012년 말 현재 미국은 533개, 중국은 470개를 갖고 있다. 중국의 미국 추월은 시간 문제다. 현재 중국이 짓고 있는 것만 332개로 5년 후면 800개를 넘어선다. 2022년이 되면 중국의 마천루는 1318개에 달해 536개에 머물 미국의 2배 이상이 된다.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마천루 왕국이 되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세워지는 마천루의 87%가 중국에 있으며, 인류 역사상 지금만큼 하늘 가까이로 다가서고자 하는 건축 열기는 없었다.

중국 내 마천루 건설 붐을 이끄는 곳은 상하이(上海)다. 98년 금융 중심지인 푸둥(浦東) 루자줴이(陸家嘴)에 88층, 높이 421m인 진마오타워(金茂大厦)가 들어서면서 중국 최고(最高)라는 역사를 썼다. 그러나 이 영화는 10년에 그쳤다. 2008년 진마오타워 옆에 101층, 492m 높이의 상하이세계금융센터(SWFC)가 문을 연 것이다. SWFC는 ‘병따개 건물’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건물 상층부에 있는 네모 형태의 빈 공간이 마치 건물 전체를 병따개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SWFC가 갖고 있던 중국 제일의 고루(高樓)라는 명성 역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옆에 121층, 높이 632m의 상하이타워(上海中心)가 올해 준공을 목표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마천루 키 재기는 상하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2017년 초 완공 예정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녹지(綠地)센터가 당초 606의 높이를 상하이타워보다 4m 높은 636m로 높일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광둥(廣東)성 선전(深?)에 지어지는 핑안(平安)국제금융센터는 118층에 660m의 높이를 자랑할 전망이다. 2016년 봄 완공이 목표다.

중국 1위를 넘어 세계 최고(最高)를 지향하는 마천루 또한 계획되고 있다. 미국 고층건물도시주거위원회(CTBUH)에 따르면 현재 세계 1위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로 163층에 높이는 828m다. 이에 도전장을 낸 게 후난(湖南)성의 위안다(遠大)그룹으로 창사(長沙) 교외에 220층, 높이 838m의 스카이시티(天空之城)을 짓겠다는 것이다. 부르즈 칼리파보다 10m 높아 그야말로 천하제일이 된다. 위안다 그룹은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1007m 높이의 킹덤타워를 2019년까지 세우겠다고 하자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 1008m 높이의 스카이시티 2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실현 가능성은 두고 봐야겠지만 천하제일의 높이를 향한 중국의 야심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이 향후 10년 동안 마천루 건설에 쏟아 부을 돈만 1조7000억위안(약 280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에 부는 마천루 건설 열풍의 원인은 무언가. 1930년대 미국을 휩쓴 마천루 바람은 경제력과 선진 과학기술을 과시하는 측면이 있었다. 60년대 일본의 초고층건물 짓기 열풍은 일본의 전후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가 강했다. 중국도 과시 측면이 크다. 기업은 브랜드를 높이고 도시는 이미지를 제고하며 정치인은 업적을 남길 수 있다. 특히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중국 경제발전의 핵심으로 도시화를 외치는 게 마천루 건설의 거대 엔진이 되고 있다. 중국은 10년 안에 2억 5000만 명의 농민을 도시민으로 흡수할 계획이다. 도시민이 많아지면 임금이 오르고 각종 소비업종이 살아난다. 또 도시화에 따른 도로와 철도, 인프라 건설 등으로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상존한다. 안전 문제가 주요 위협이다. 소방, 자재, 건축 등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마천루가 즐비한 상하이 푸둥 지역은 지반 침하를 걱정하기도 한다. 불량 시공사가 건설에 뛰어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완공 후 시장의 임대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가 가장 큰 위험이다.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란 말이 있다. 99년 도이치뱅크의 분석가 앤드류 로런스가 제기한 개념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건물 프로젝트는 주로 돈줄이 풀리는 통화정책 완화 시기에 시작되지만 완공 시점엔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고 버블이 꺼지면서 결국 경제 불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뉴욕의 두 부호인 크라이슬러의 월터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의 존 제이콥 래스콥이 벌인 누가 더 높은 빌딩을 짓는가의 경쟁으로 크라이슬러 빌딩(30년)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1년)이 낙성되는 것과 함께 미국은 대공황에 빠져들었다. 또 73년 뉴욕에 쌍둥이 세계무역빌딩을 지었을 때는 오일 쇼크를 맞았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타워(452m)는 완공되기 전인 97년부터 아시아를 휩쓴 혹독한 금융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세계 1위인 부르즈 칼리파 또한 착공 당시인 2004년엔 중동 국가의 오일 머니와 서방 금융사의 투자자금이 몰려 들며 유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으나 완공 시점인 2010년 초엔 2년 전부터 불어 닥친 뉴욕발 금융위기 탓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중국도 그런 전철을 밟을까. 로런스가 말한 ‘마천루의 저주’는 몇몇 결과를 뜯어 맞춘 결과이지 법칙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관건은 중국의 경제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마천루의 공실률을 최소화할 수 있을 만큼 중국경제가 잘 나가는 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천하제일의 마천루를 향한 중국의 야심은 그래서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훈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