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외상의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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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이 「주요우방」으로 꼽는 나라 속에는 미국·일본·영국·서독 등과 함께「프랑스」가 포함된다. 실존주의요,「샹송」이요, 「패션」이요 하는「프랑스」문화가 한국의 지식인사회에 행사한「영향력」을 생각하면「유럽」에서는 「프랑스」가 가장 한국에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프랑스」쪽에서 보는 한국은 그렇게 가까울 수는 없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문화교류라는 말도 한·불 관계에서는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오는 일방통행이다. 그리고「프랑스」문화에 대한 우리들의 접촉과 이해도라는 것도 다분히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막연히 생각하던 것보다는 한·불간의 접촉과 상호이해의 기반이 훨씬 약한 것이다.
「장·프랑스와-퐁세」「프랑스」외상이 79년과 80년 두 번이나 방한일정까지 잡았다가 끝내 오지 못하게 되었던 것도 한국의 국내정치에 대한「프랑스」의 불만 때문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두 나라관계가 실제로는 깊지도 넓지도 않다는 원인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외상의 방한이 한·불 수교 97년만에 처음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뜻밖의 일이 아니라는데 주목할 이유도 여기 있는 것이다.
정부는 「퐁세」외상을 맞아 의논할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의 대「아프리카」외교에 대한「프랑스」의 협조를 요청할 것이고, 「프랑스」가 먼저 제의한 것으로 알려진 한·불 합작의 중동진출이 논의될 것이다.
또 한가지 한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는, 한국과 비적성 공산국 간에 어떤 관계를 트는데 「프랑스」가 맡아주었으면 하는 중재역할이 있다. 가령「프랑스」는 한·소간의 중개역으로는 가장 적합한 나라로 생각되는 것이다. 「프랑스」가 교역대상으로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라는 것은 숫자가 말해준다. 79년에 수출 2억4천9백만「달러」, 수입 3억5천7백만「달러」이던 것이 80년에는 수출 2억9천1백만「달러」, 수입1억9천만「달러」로 79년의 입초가 출초로 바뀌었다. 「프랑스」는 한국이 구공시(EEC)와 맺은 협정에 따라 한국산 섬유제품에「쿼터」를 적용하고, 「프랑스」자체가 또 일방적인 수입규제를 하고있어 이 문제도 「퐁세」일행과 자세히 논의될 것이다.
한국은 원자력발전소 제9·10호의 원자로부분을「프랑스」에 발주키로 하여 교역증진, 한국의 대구공시 수출확대에 대한 「프랑스」의 호의적인 반응이 예상되기도 한다.
김대중문제를 놓고 「프랑스」의회의 범여권을 형성하고 있는「지스카르」파(UDF)와 「드골」파(RPR) 중에서도 「지스카르」파의 일부 의원들이 한때 북괴와의 관계개선을 주장한 바도 있었다.
「퐁세」외상의 방한은 한·불 우호에 대한 이런 장애요소가 깨끗이 걷혔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반갑다.
우리는 방한하는 「퐁세」외상에게 한국의 강력한 안보가 「나토」권의 방위에 간접적이지만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시켜야한다. 한반도와 극동전선의 약화는 서부전선(유럽)의 소련군의 강화를 훨씬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퐁세」외상은 한국의 경제적인 안정이 안보의 바탕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고 이번 기회에 장기적이고 폭넓은 한·불 협력의 기초를 다지는데 성의를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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