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중공·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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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이 내심으로는 미군의 한국 주둔이 계속되기룰 바란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키신저」를 비롯해 중공고위층과 접촉이 잦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마냥 희망적인 관측만은 아닌 것 같다.
주한미군에 대한 중공의 그런 입장은 북한·중공, 그리고 소련·중공관계를 긴장시키는 충분한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김일성의 입장에서 보면, 중공이 입으로는 북괴의 통일정책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막상 한반도 문제해결의 최대 장애물이라고 북괴가 주장하는 주한미군문제에서는 결과적으로 한국·미국·일본과 이해를 같이 한다는 불만을 가짐직 하다.
소련의 비위가 상하는 것은 중공의 주한미군환영의 태도가 대소경계론에서 출발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김일성이 중공에 대해 불만을 가질 근거는 다른 데서도 찾을수 있다. 예컨대 등소평체제에 의한 모택동비판은 김일성가의 세습독재왕국의 건설에 이로울 것이 없다. 미·중공협력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서 중공이 계속 북괴의 호전적인 자세를 견제하는데서도 김일성은 좌절감을 느낄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단순화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소위「북방삼각관계」에서 북괴와 중공관계가 냉각된다면 북괴의 소련경사가 예상된다. 이런 단순한 공식을 반영한 것이 이달초에 밑도 끝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 북괴의「아프가니스탄」파병설이다. 북괴가 5백명의 전투병력을「아프가니스탄」에 보낸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북괴의 노골적인 소련지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김일성이 과연 비동맹권, 특히 「이슬람」권에서의 외교적 파산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했을 것인가는 깊이 생각할 문제다.
물론 「레이건」행정부의 등장으로 철군계획이 백지화되고, 평양정권이 계속 시도한 미국과의 단독접촉·관계개선이 벽에 부딪치고, 중공은 대외정책에서 실리를 쫓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는 일련의 사태로 북괴의등을 「모스크바」쪽으로 떠밀만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도 할만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북괴의 소련 경사설에 역행하는 사태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3월9일 「캄보디아」의 「키우·삼판」이 평양에서「시아누크」와 만나 권토중내를 논의한 사실을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다. 지금의「캄보디아」의「헹·삼리」체제가 소련과「베트남」의 후견하에 있다는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키우·삼판」은 소련과「베트남」의 개입으로 정권을 잃고, 마침내는 김일성의 주선으로「시아누트」와 화해하여「프놈펜」복귀를 노린다. 김일성은 결과적으로는 중공의 대역으로「키우·삼판」과「시아누크」의 반소·반「베트남」전선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시아누크」「키우·삼판」모의에서 김일성이 맡은 정확한 역할도 확실히는 알수가 없다.
그러나 중·소분쟁에서, 그리고 북쪽의 삼각관계에서 북괴가 그동안 지켜온 중립적인 입장을 뚜렷한 친소노선으로 전환했다는 관측이 속단인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한국과 그 우방들이 현관계에서 평양·「모스크바」의 밀착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대중·소관계에서 균형을 잃은 자세를 취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소련의 「이즈베스티야」와 중공의 인민일보는 지금 평양이 들으라는 듯이 서로 상대방이 한국에 호의적이라는 비난을 교환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소련과 꾸준히 접촉의 실적을 쌓아왔고 최근 몇년동안은 중공과도 접촉의 분위기를 제법 조성하여왔다.
중·소의 어느한쪽이 하룻밤 사이에 대한관계정상화의 자세로 나오지않는한 어느 한쪽의 미소를 사기위해 다른 한쪽의 분노를 사는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린 의미에서 북괴의 동향을 친소다, 친중공이다 하는 식의 흑백 논리로 파악하는 자세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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