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⑦ 시 - 이원 '의자에…' 외 21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곧추 세운 등뼈 아래로
엉덩이를 엉거주춤 유지해야 하는
이 포즈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각자의 배후를 전적으로 위탁하는 포즈를
우리는 언제부터 배워야 했습니까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디부터 구부려야 했습니까
어디를 숙여야 했습니까

의자를 닮기 위해
발을 매단 채 손을 매단 채
이상한 도형이 되어야 했습니다

침묵하고 있는 이 짐승은 언제 달리기 시작하나요

창 밖 난간으로는 발음을 모르는 혀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밤의 숲에 가면 뼈의 외침이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로잡힌 척 의자에 앉아 우리는 손만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한 끼를 위한 너덜너덜한 손의 동작을 왜 멈출 수 없습니까
항문과 입을 동시에 벌리는 법

우리는 어쩌면 이토록 징그러운 동작을 배웠을까요

의자 손잡이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입이라 해도

고해성사의 순서를 알게 되었다면 그것 또한
사소한 습관이 아니겠습니까

뒷모습이 구겨져 있습니다
깜깜한 곳에 우리는 너무 오래 접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
의자와 의자가 대화하는 것을 믿습니까

토하고 말았지요

이런!
의자들끼리는 당황은 하지 않습니다

(‘문예중앙’, 2014년 봄호’)

 
시인 이원(46)은 현대시의 다채로움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1996년 첫 시집 제목인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는 같은 해 해체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제목이다. 이 시집에 실린 첫 시의 제목은 ‘PC’. 2001년 두 번째 시집은 세종대왕의 찬불가(讚佛歌) ‘월인천강지곡’을 비튼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였다.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 ‘나는 클릭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유명세를 탔다.

얼핏 ‘0’과 ‘1’의 무한 연쇄가 만드는 디지털 가상세계 안에서 길 잃고 분열된 자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재빠른 감각의 문명비판적인 면모는 이 시인의 일부일 뿐이다. 그의 시편들은 보다 묵직하고 근원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씨가 흠모했던 스승 오규원(1941∼2007) 시인이 ‘신표현주의’라고 명명한 시편들에서는 가차 없는 시선, 강렬한 수사(修辭)가 돋보인다. 정밀묘사를 위한 대상 왜곡이다.

올해 미당문학상 후보작 22편 가운데 ‘점점 더 단단한 공이 되어가려는 듯이’는 신표현주의 계열로 읽힌다.
시 속에서 알몸의 여자는 샤워 부스 바닥에 웅크려 토악질을 하고 있다. 헛구역질인 듯 ‘눈물은 머리통을 뚫고 나오지 못’하고, 여자는 ‘점점 더 몸을 웅크’리고 등은 ‘부풀어 오른다’. ‘목구멍에서 항문까지 하나로 뚫린’ 여자의 몸 위로 ‘물 쏟아지는 소리가 잘린 철사처럼 쏟아진다’. 결국 시인은 ‘여자의 허리뼈를 따라 꿰맨 자국이 선명해진다/파고 묻고 메운 구덩이처럼 여자는 있다’라고 묘사한다. 섬뜩한 묘사다.

네 편이 포함된 ‘애플 스토어’ 연작시는 현대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면모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한없이 매끄럽고 간지러운 문명의 첨단 기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이면에 노동착취·인간소외 등이 똬리를 틀고 있는 건 아닌가. 네 편 중 ‘애플 스토어 1’은 지난 4월 동료 시인·평론가 100명이 선정한 ‘오늘의 시’에 선정됐다. 하지만 감상이 쉽지는 않다. 시인 문태준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전문을 소개한 시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에 대해 이씨는 “갈수록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쓴 시”라고 설명했다. 의자에 엉거주춤 앉은 자세에서 의자를 빼낸 후 사람의 자세에만 주목하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인가. 의자에 앉아 음식이라도 먹는다면 항문과 입이 동시에 열린 묘한 상태가 되는 게 아닌가. 이씨는 “먹고 살기 위해 숟가락·젓가락 드는 자세를 무한반복해야 하고, 늦은 밤 귀가할 때 교통편을 찾고 타고 내려 걷는 똑같은 절차를 반복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뭔가 인간 존재에 끔찍한 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의자에…’는 단순히 인간 행동의 맹목적인 부분, 존재의 한계 등을 파고 든 작품이 아니다. 이씨는 “시의 형식 실험과 정서의 표출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항목의 화해를 꾀했다는 점에서 내게는 일종의 시적 전회(轉回)의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물론 그런 특징을 잘 포착하려면 지금까지 이씨 시의 궤적 전체를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이원=1968년 경기도 화성 출생. 92년 등단.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현대시학' 작품상, '현대시' 작품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