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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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두환 대통령이 전직대통령과 정당대표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것은 이 나라 정치발전을 위해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모임에서 무엇을 논의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에 앞서 이런 모임이 있었다는 자체가 대견스럽고 앞으로의 정치과정에 대해 국민의 기대를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믿는다.
과거 대통령이 이와 유사한 모임을 마련한 선례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정치사의 한 부끄러운 대목이지만 새로운 전례를 만든 이번 간담회는 그 만큼 더 뜻이 크다.
대화를 떠난 민주정치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견이나 다른 입장이 대화와 토론에 의해 조정되어 결론에 이를 때 그 결론은 일방적인 지시나 독단에 의한 결론보다 더 넓고 깊은 설득력과 유효성을 갖게 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구시대정치의 가장 큰 실패의 하나는 바로 이처럼 소중한 대화의 결여, 또는 대화의 경시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과거 많은 국민이 목마르게 대화를 바라고 많은 정치인들이 대화로 문제해결을 모색한 일이 많았지만 대체로 이런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으며 해결책은 하향적으로 일방적으로 시행되곤 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상대방을 더욱 좌절시켜 과격한 방향으로 몰고 국민을 실망시킴으로써 독단적으로 내린 해결책의 원만한 성사에까지 지장을 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뻔한 악순환이 제 5공화국까지 이어져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구시대정치의 폐단을 되풀이 않는다는 것은 새 시대정치의 가장 큰 요청이다.
바로 이점에서 이번 간담회는 구시대정치와는 달라야만할 새 시대정치의「스타일」과 방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한「모델」이 아닐 수 없다. 대화를 한다 함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평가한다는 뜻이요, 대화정치란 상대방에게도 귀를 기울이면서 이해시키고 납득시켜 결론에 이르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구시대에 흔했던 독단이나 소신일변도의 정치는 지양한다는 뜻이다.
정치가 이런 방식으로 전개될 때 극한대립이니 실력행사니 국론의 혼란이니하는 우려할 일은 스스로 발붙일 여지가 없어질 것이다. 간담회에서 중요한 문제가 많이 거론되었지만 앞으로 이 같은 모임을 자주 갖겠다는 대목을 우리가 가장 중시하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더우기 제 5공화국의 역사적 출범을 눈앞에 두고 국민적 대화합의 기운이 팽배한 이 시기에 대통령이 이런 차원 높은 정치회합을 마련한 것도 뜻깊다 하겠다. 다양한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정당대표들과 평소 고소대처에서 국사를 걱정하던 전직대통령과 함께 현직대통령이 국정을 논의하고 대화합의 방도를 함께 모색하는 모임 자체가 화합의 큰 상징이 될 수 있다. 많은 국민이 무언중에 또는 부지중에 자기생각이 최고의「레벨」에서 대변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함으로써 화합의 조건이 성숙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담회에서 논의된 몇가지 구체적인 국정방향에도 음미할 만한 내용이 많다. 우선 거듭된 전대통령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의지, 공명선거를 향한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집념, 구정치폐단의 일소 등이 그렇고, 앞으로 예상되는 대사면의 기준에 관한 언급 등도 유의할 만하다.
전대통령은『좌익을 제의하고 대사면을 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이른바 인권문제 등으로 알려진 구시대의 불쾌한 유산이 멀잖아 깨끗이 정리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모 비례의석을 제 1당에 3분의 2을 배분케 한 현 제도의 시점문제가 거론된 것은 새 국회 구성 후 이 문제를 재론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으로 생각되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번 간담회로 표시되는 새 시대 정치의 전개방식, 즉 「대화와 대화를 통한 화합의 정치」가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이번과 같은 모임이 합의된 대로 자주자주 열리기를 거듭 희망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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