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대국으로 내실다져|포철확장 준공이 갖는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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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포항종합제철 제4기확장공사가 완공되어 한국은 세계13위의 철강생산국으로 부상했다.
포철의 조강능력 8백50만t은 단일공장으로선 자유세계 8번째·전세계 11번째다.
지난 70년4윌1일 기공, 첫삽을 든지 11년만에 포철은 그야말로 백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종합제철공장으로 비약한 것이다.
근대화를 서두르고 있는 중공의 등소평부수상이 일본경제인들을 보고 『한국의 포항제철과 똑같은 것을 우리나라에도 지어줄수 없느냐』는 요청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70년초 한국이 종합제철을 짓기위해 일본재계에 협력을 요청했을때만 해도 『철강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니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섬유같은 경공업에 성공했다해서 너무 자신을 가지면 곤란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한국은『두고보자』며 대일청구권대금이란 비장의 돈을 몽땅 넣으면서 처음부터 1백3만t규모에 도전했고 불과 10년만에 일본의 금성탕지라 생각되던 동남아시장에서 당당히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요즘 일본에선『괜히 한국의 철강업을 키워 피해를 본다며 양호우환이 바로 이것』이라는 반성론까지 일고있다.
포철엔 이제까지 내자8천8백12역원·외자19억5천7백만「달러」모두 1조8천9백19억원의 돈이 투입됐다. 단일공장으로는 건국이래 최대규모다. 만약 지금 포철과 같은 규모의 제철공장을 지으려면 약85억 「달러」 가까이 든다한다. 포철은 5조5천억원 짜리인 것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철강공업이 전쟁고철의 처리를 위주로 소규모 압연설비뿐이어서 제선·제강·압연간에 기형적 불균형을 이루던 것이 이제는 원료도입에서부터 압연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일관제철소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포철은 국내조강생산능력의 80%를 차지해 한국철강업의 대명사라 할수 있다.
철강산업은 자본·기술집약적 대형장치산업이기 매문에 개도국들은 종합제철소를 모두 탐내지만 기술과 시장의 제약때문에 중도포기하는 예가 많다.
지난 72년 국내철강 자급도가 34%에 뷸과했으나 올해부터는 국내수요(81년 7백70만t)를 완전총족시킬수 있고 오히려 3백80만t의 수출여력까지 생겼다.
뿐만 아니라 철강소재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건설·기계·자동차·조선등관련산업의 균형있는 발전과 국제경쟁력제고에 기여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과 철강능력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도 의미가 있다. 해방이후 철강능력은 북한이 앞서왔으나 포철2기설비가 본격가동된 77년부터 역전되기 시작, 4기설비가 준공된 81년부터는 한국이 북한을 2배이상 능가(북한의 80년철강설비능력 6백만t)하게 되었다.
포철은 이밖에 2만2천9백여명의 고용증대, 23억「달러」의 수입대체효과를 가져왔고 제철소건설경험을 통하여 제철 「플랜트」의 「엔지니어링」 에서부터 건설에 이르기까지 독자적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대만의 철강공사 연수생들이 대거 포직에서 연수를 받을만큼 국제적으로 기술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1기설비 건설당시는 설비계획과 설비를 전적으로 외국기술용역에 의존했으나 4기에는 1백% 포철단독 설비계획으로 공사를 끝낼 정도였다.
포철은 국영기업이 대부분 부실기업에 시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80년까지 총1천5백억원의 순익을 올려 내자공사비의 75%를 자체 마련했고 1기부터 4기까지의 공사중 총공기를 17개월이나 앞당겼으며 4기공사에서도 5백50억원의 비용절감을 실현했다.
제1공장의 성공에 힙임어 포철은 3백만t규모의 제2공장을 아산이나 광양만에 세우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늘어날 철강수요로 보아 제2공강 건설을 서둘러야 하나 최근의 불황과 재원조달때문에 착공이 늦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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