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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 시간, 우선 실험을 해봅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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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금 과장해 표현하면, 등교 시간 때문에 한 나라가 쪼개질 뻔한 적이 있다. 3년 전 영국 정부는 자국의 표준시간을 유럽 표준시간에 맞춰 한 시간 앞당기려 했다. 유럽 다른 나라와 시간대가 달라 생기는 불편함을 없애자는 취지였다. 에너지 절약과 관광수입 증가 등 부수적 효과도 제시됐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에서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한 시간을 당기면 위도가 높아 해가 늦게 뜨는 스코틀랜드에서는 겨울철에 오전 10시쯤 돼야 날이 밝기 때문에 학생들이 어둠 속에서 등교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커진다는 얘기였다. 청소년들의 바깥 활동이 많은 오후에 해가 늦게 지게 됨으로써 오히려 교통사고 위험이 줄어든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었지만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데 별로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지역구가 스코틀랜드인 하원의원들이 “기준 시간을 바꾸려면 먼저 스코틀랜드를 독립시키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 일은 없던 일이 됐다.

 영국에는 등교 시간 때문에 유명해진 두 학교가 있다. 잉글랜드 북동부의 멍크시튼 하이스쿨과 런던의 UCL 아카데미다. 두 학교의 고교 수업은 다른 학교들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0시에 시작한다. 멍크시튼은 5년째 늦은 등교가 진행 중이고, UCL 아카데미는 지난해 3월 개교하면서 이를 도입했다.

 두 학교의 실험은 영국의 수면의학 최고 전문가인 옥스퍼드대 브레이즈노즈 칼리지의 러셀 포스터 교수의 이론에 따른 것이다. 그는 청소년기(특히 10대 후반)에는 인체의 수면 리듬에 변화가 생겨 오전 10시 이후에야 두뇌가 잠에서 온전히 깨어난다고 주장한다. 강연과 방송 인터뷰 등 기회가 날 때마다 역설한 그의 노력 덕분에 이 이론은 영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학교들의 반응은 냉정하다. 멍크시튼이나 UCL 아카데미의 학업 성취도나 진학률 등을 통해 효과가 명확하게 확인될 때까지는 등교 시간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7시30분까지 등교하는 독일 학교의 학생들은 공부를 잘 못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경험적 증명에 충실한 영국인들답다.

 경기도 교육청의 등교 시간 늦추기는 ‘일거의 변화’를 꾀하는 불도저 식 사업을 쏙 빼닮았다. 지난 정부의 4대 강 사업처럼 부분적 실험도 없이 동시다발로 진행된, 그래서 갖가지 부작용을 보면서도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고서도 말이다. 이제는 ‘한 칼’에 해치우려는 조급증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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