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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 삼성의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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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삼성그룹에 대한 관심은 지난 5월을 기점으로 급격히 높아졌다.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삼성의 미래’ 이슈가 전면에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은 그 이전부터 ‘미래’를 대비해 변화를 꾀하는 중이었다. 최근 내놓은 2014년도 반기보고서에 그 행보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큰 흐름은 ‘빅데이터·사물인터넷·헬스케어 사업 강화, 경영권 승계를 위한 대주주 지배력 강화’로 요약된다.

 특히 어떤 계열사들을 추가하고 제외했는지, 그 과정에서 지분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보면 삼성이 준비하는 사업방향과 ‘포스트 이건희’시대의 지배구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삼성은 반기보고서에서 “현재 삼성그룹에는 전년 말 대비 3개 회사(삼성웰스토리·서울레이크사이드·삼성카드고객서비스)가 증가하고, 5개 회사(삼성코닝정밀소재·삼성SNS·글로벌텍·365홈케어·삼성석유화학)가 감소해 73개의 국내 계열회사가 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계열사(비상장 포함)가 73개까지 줄어든 건 2010년 이후 4년 만이다. 사업영역이 겹치는 회사들을 합병하거나, 수익성이 의심되는 사업은 삼성간판을 떼고 분리해 낸 결과다. 유리기판을 만드는 삼성코닝정밀소재는 당초 삼성이 LCD산업의 호황을 노리고 미국 코닝과 합작한 회사다. 태양전지용 유리 등 태양광 산업이 커질 경우도 고려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보유지분 전부를 미국 코닝에 넘겼다. 삼성코닝의 계열사로 생산설비를 제작해왔던 글로벌텍 역시 계열에서 제외됐다. 삼성은 대신 미국 코닝과 플렉서블(휘는)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에 대해 직접 협력한단 계획이다.

 반면 헬스케어 분야는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은 온라인 건강상담 업체인 365홈케어를 삼성SDS 자회사인 오픈타이드코리아와 합병했다. 오픈타이드는 비즈니스 컨설팅, 정보기술(IT) 아웃소싱 업체다.

 삼성 측은 “기존 홈케어 서비스에 정보통신기술(ICT) 시스템을 활용해 고도화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웨어러블(착용가능한) 기기 등 모바일 기반의 건강상담 시대를 대비하겠단 얘기다.

 업계 최초로 콜센터(삼성카드고객서비스)를 분리해 삼성카드의 100% 자회사로 만든 건 고객 맞춤형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차세대 먹거리로 불리는 빅데이터 사업을 염두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삼성카드는 최근 빅데이터 전문가를 영입하고 오는 10월 빅데이터 기반의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공격적인 시장선점에 나서고 있다.

 삼성의 관심 사업은 최근 인수합병(M&A) 일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미국의 사물인터넷(loT; the lnternet of Things) 업체인 스마트싱스를 인수했고, 19일엔 스마트홈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미국의 시스템 에어컨 유통업체 콰이어트사이드를 인수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0건의 M&A를 성사시켰는데 의료장비·헬스케어·사물인터넷 등 신사업 개척과 관련한 분야가 눈에 많이 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의 상장이 그 신호탄이다. 이번 반기보고서에 언급된 계열사 중 상당수는 제일모직 사업재조정과 직결되고 ‘제일모직 가치 높이기’라는 공통된 방향성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무게중심이 실린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제일모직 주주명부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5.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8.4%),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8.4%) 등 삼성가 3세들이 올라있다.

 당장 옛 에버랜드와 제일모직 패션사업부가 합병하면서 연 매출은 5조원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또 급식과 식자재 유통사업을 떼어내 삼성웰스토리를 새로 만들어 100% 계열사로 뒀다. 지난 3월엔 수도권 최고의 골프장으로 평가받는 서울레이크사이드CC까지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제일모직은 고 이병철 창업주가 세번째로 만든 회사로 의미가 남다르다”며 “제일모직이 창업주의 정신을 이으면서 패션과 레저라는 핵심사업으로 그 가치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이 빠져나간 제일모직 소재사업부분은 지난 3월 말 삼성SDI와 합병했다. 이 합병으로 ‘삼성SDI-삼성전기-삼성테크윈-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전자사업 수직계열화가 완성됐다는 평가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도 이재용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합병법인인 삼성종합화학의 최대주주는 삼성물산(37%)인데,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사실상 삼성SDI(7.4%)다. 그리고 삼성SDI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20.2%)다. 결국 잇단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입지가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최대주주였던 삼성SNS(45.8%)가 삼성SDS에 합병되면서 과징금까지 피하게 됐다. 당초 두 회사는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총수 단독 혹은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에 속해 과징금을 내야했다. 그러나 합병이 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이 20% 이하로 줄어 오히려 과징금 대상에서 빠졌다. 옛 에버랜드 역시 내부거래가 없던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인수하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확 줄었다.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고, 오너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두 마리 토끼 잡기식 결과를 낳은 것이다.

 재계와 증권가에선 삼성이 앞으로 제일모직을 지주회사로 하고, 그 밑에 나머지 계열사를 두는 구조로 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해야 하고, 금융 관련 지주회사를 만들어야 하는 등 난제가 남아있다. 그룹의 지배구조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진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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