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정말 풀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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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바닥에서 꿈쩍도 않던 경기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있다. 하도 전례없던 불황탓인지 약간의 미동에도 모두들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과연 경기는 회복되고 있는 것인가. 한국은행이 만들어내는 경기예고지표는 지난해 5월이후 0.4라는 사상 최저수준을 6개월동안이나 계속하다가 11월들어 간신히 0.5로 떠오른데이어 12월지표도 0.6을기록했다.
예고지표가 보통 3개월후의 경기를 예고한다니까 금년초를 저점으로 경기는 일단 바닥권을 탈출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지표나 수치변동 이외에도 그동안 불황을 심화시키는데 큰몫을했던 사회불안등 경제외적요인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더욱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이 대두되고 있다. 또 지겹던 불황의「터널」이 어서 끝났으면 하는 기대감도 부인할수 없다.
물론 예고지표가 알리는대로 경기가 회복될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우선 지난해「11.8」조치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①돈이 집중적으로 풀리고있고 ②수출이 호조를 보이는데다 ③정정의안정에 따라 위축된 소비「마인드」가 풀린다든지 ④선거의해라는 점등을 들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예고지표를 작성하는 한은측은 최근의 일부지표변동을 근거로 경기회복을 단언하는 것은 성급한 기대라고 못박고있다.
예고지표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긴하나 0.6이라는 수준자체가 여전히 불황권의 중심을 뜻하는 것이며 0.1「포인트」씩 올랐다고해서 마치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이 경기회복이 보장된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신중론을 펴고있다.
좀 나아질것을 예고한 12월지표를 보아도 생산이 다소 늘고, 재고가 줄었으며 수출이 계속 호조를 보일것이라는것 이외에는 별다른 변화징후를 찾아볼수 없다는 것이다.
재고의 감소는 현저해 40%선을 계속하던것이 20%선으로 크게 줄어들었으나 전산업의 생산은 오히려 전월에 비해 1.6% 감소(계절변동을 감안해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말해서 연말경기와 수요자금융통, 그리고 재고정리를 위한 할인판매등으로 재고는 크게 줄어든 반면 생산은 여전히 뒷걸음질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뭉치돈이 풀리는가운데에도 설비투자를 위한 은행대출은 5.1%증가에 그쳤고 일반기계류 생산은 전월에이어 계속 20%선의 감소를 기록해 투자「마인드」는 여전히 얼어붙어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소비추이를 나타내는 서울도소매액지수도 전월의 13.2%감소에 이어 12월에도 12.2%가 줄어들었고 건축허가면적 역시29.9%가 감소했다.
한마디로 감소하던 폭이 다소 줄어들었을뿐 정상상태로의 경기회복은 아직도 상당한 거리에 있음을 알수 있다.
또 수출이나 신용장내도액이 10월이후 급증세를 보인것도 따지고보면 전년의 10.26사태직후 극히 저조했던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으며 올해는 환율인상에 따라 수출이 호조를 보였던 지난해를 기준으로 비교해야 하니까 증강폭도 상대적으로 둔화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형편에서도 경기가 부양되리라는 기대를 떨칠수 없는 이유는 지금의 객관적인「데이터」에서라기보다는「경기를 부양시켜야 한다」는 정책의지에서 찾아야할 것같다.
상반기중에 돈을 집중적으로 풀겠다는것이 그것이다. 인위적으로라도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가장 직접적인 부양책이다.
그러나 경기회복을 서두는 나머지 급하다고 돈을 마구풀면 오히려 급전되는 과열경기로 심한「인플레」유발을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단순히 돈이 흔해져서 뿐만 아니라 급작스런 수요증가를 공급이 따르지 못하면 자연「인플레」가 가중되기 마련이다. 더우기 최근 2년남짓 기업의 설비투자가 거의 없었던 점을 감안할때 자칫하면 통화증발효과가 미치는 올 하반기들어서는 심각한 공급부족현상까지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국제수지때문에 모자라는것을 마음놓고 수입할수도 없는 처지이고 보면 무턱대고 지금의 불황을 지겨워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불황이 좀더 계속되더라도 자생적인 노력으로 경기가 천천히 회복되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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