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학 못하는 우리 아이 혹시 내 유전자 탓?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여성 최초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뉴스1]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2년 연속 금메달(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21세에 박사(아르투르 아빌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석학연구원), 프린스턴대 역사상 두 번째 젊은(29세) 정교수(만줄 바르가바 프린스턴대 석좌교수)….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세계수학자대회(ICM·21일까지) 필즈상 수상자들의 화려한 이력이다. 하지만 과거 수상자들 가운데는 더 놀라운 기록을 가진 이들도 있다. 1978년에 상을 받은 찰스 페퍼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그는 12세에 대학에 입학해 15세에 첫 논문을 썼다. 20세에 박사 학위를 받고 22세에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학 정교수가 됐다. 바르가바보다 더 어린 나이에 프린스턴대 정교수가 된 사람이 바로 그다. 2006년 수상자 테렌스 타오 미국 UCLA대 교수는 IMO 역대 최연소 출전·입상기록을 갖고 있다. 11세에 동메달, 12세에 은메달, 13세에 금메달을 받았다. 그의 지능지수(IQ)는 230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과는 너무 다른 이런 이력을 보면 ‘수학적 재능은 타고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번 필즈상 수상자 4명 중 2명(바르가바, 마틴 헤어러 영국 워릭대 교수)이 수학자 가문 출신이란 사실은 이런 추정을 더 그럴듯하게 만든다.

 통계적 근거도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행동유전학자인 로버트 플로민 교수팀은 일란성 쌍둥이와 동성(同性) 이란성 쌍둥이 7500쌍을 대상으로 유전적 요인이 어린이들의 산술 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쌍둥이는 한날한시에 한집안에서 태어난다. 가정환경이 같고 교육환경도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일란성이냐, 이란성이냐에 따라 유전적 차이만 있다. 조사 결과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산술 능력이 더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수학 능력 차이의 3분의 2는 유전적 차이”라고 결론 냈다.

 미국과 중국에선 이런 점에 착안해 수학 천재의 ‘뿌리’를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명 과학저널 ‘네이처(Nature)’는 지난해 말 미국의 벤처 갑부 조너선 로스버그가 수학 천재 유전자(the genes that underlie mathematical genius)를 찾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로스버그는 카네기멜런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온 토렌트’란 혁신적인 지놈(Genome·유전체) 분석기를 개발해 1억6800만 달러(약 1716억원, 2001년 ‘포춘’지 추정)의 재산을 모았다. 최근에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 두 곳을 8억8000만 달러(약 8990억원)에 팔아 억만장자가 됐다.

 로스버그는 이런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일명 ‘아인슈타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신이 개발한 ‘이온 토렌트’로 미국 최상위권 대학의 수학자·이론물리학자 400명의 지놈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다. 그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아인슈타인은 ‘우주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전자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알더스 미국 UC버클리 수학과 교수 등이 그의 아이디어에 공감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세계 최대 지놈 분석업체인 중국의 베이징유전체연구소(BGI)도 2012년부터 비슷한 연구를 시작했다. BGI는 1970년대 미국에서 진행된 수학 영재 연구 참여자 1600여 명의 DNA를 갖고 있는 플로민 교수와 손을 잡았다. 여기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모집한 IMO 입상자 등 수학 영재 500명의 정보를 추가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수학자들도 많다. 박형주(포스텍 수학과 교수) 서울 ICM 조직위원장은 “수학은 분야·학자별로 각기 다른 재능과 성격을 필요로 한다”며 “특정 유전자에 의해 수학 능력이 결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명환(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대한수학회장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전자보다)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이고, 그런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수학을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본지의 e메일 설문에 응한 외국 수학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수학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서울 ICM 폐막식 때 릴라바티상을 받게 된 아드리안 파엔자(과학저널리스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 수학 박사)는 “아이들은 같은 스킬 세트(skill set·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기능)를 갖고 태어난다. 교육과 생활환경이 큰 영향을 미칠 뿐”이라고 주장했다.

 잉그리드 도브시(듀크대 수학과 석좌교수) 국제수학연맹 회장은 “여러 개의 유전자가 상호 작용해 (수학적 재능에)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지만 “지적 호기심, 논리적 사고를 살찌우는 생활환경과 교육이 최소한 (유전자와) 같이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전학 전문가도 회의론자들의 손을 들어 줬다. 한국인의 지놈지도를 분석해 2008년 처음 공개한 박종화(영국 케임브리지대 생정보학(bioinformatics) 박사) UNIST 생명과학부 교수는 “수학 천재 유전자를 찾는 것은 ‘똑똑한’ 유전자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과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음식대사가 잘되거나, 잠을 덜 자도 덜 피로한 유전자 변이를 타고나면 똑똑해 보일 수 있다. 그만큼 공부를 조금 더 할 수 있어서다. 그러니 수학을 잘하는 유전자란 건강하면서 집중력이 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뭔가에 관심을 갖고 성과를 내게 하는 모든 유전자의 합이다.” 박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한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