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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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문사가 「입시 복덕방」인가. 요즘 편집국은 시내·외에서 잇달아 걸려오는 대학지망 문의전화로 시끄럽다. 전화문의만이 아니다. 일부 학부모는 직접 찾아와 상담을 요청한다. 멀리 부산·대구 등지에서 찾아오는 극성파(?)도 없지 않다.
『예시 성적이 ○○○점인데 어느 대학 어느 계열로 가야 하느냐』『출신학교에서 정한 대학별 성적기준과 신문사에서 정한 기준이 각기 다른데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느냐』『대학별·계열별로 지망생들의·성적분포를 알아줄 수는 없느냐』『당신네들이 만든 기준만 믿고 원서를 냈다가 실패하면 그때 책임은 어떤 방법으로 지겠느냐』…
전기대학의 원서마감이 가까와질수록 문의의 열기는 애걸조의 호소에서 협박조의 윽박질로 도를 더해간다.
점장이라도 됐더라면….그 때마다 속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하는 담당기자의 심정은 수험생 자신은 물론 학부모·일선 교사의 안타까움 못지 않게 답답하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남산기슭의「동양 철학원」을 비롯한 곳곳의 점술가엔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대학 본고사가 폐지된 후 처음 실시되는 입시인데다 합격과 불합격에 영향을 출 변수요인이 너무도 많은 입시이고 보니 수험생들은 도대체 기댈 언덕이 없기 때문이다.
한 대학 지망만으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수험생들은 보통 3∼4개 대학이나 학과를 복수 지망하지만 오는 26일에 있을 면접 때엔 어느 대학 어느 학과로 찾아가야 할지 초조하기 이를데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눈치 작전」은 극성을 부릴 수밖에 없다. 일부 수험생 가족은 26일의 면접에 대비,「카폰」이 달린「콜·택시」를 3∼4대씩 예약해 두었다는 예기도 들린다.
원서를 낸 대학마다 가족들을 파견, 지망 계열별 실제 경쟁률과 예시성적 분포 등 캐낸 정보를「카폰」으로 연락해서 가장 유리한 대학을 골라가자는 계산이다.
눈치작전은 수험생뿐만 아니다. 일부 고교 교사들도 연합전선을 형성, 상호간의 정보교환으로 각기 제자들의 탈락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신문사가「입시 복덕방」이 되고,「눈치작전」이 극성을 부리는 안타까운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각 대학이 지망학생들의 계열 및 학과별 성적분포를 완전 공개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최소한의「가이드·라인」만이라도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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