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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로 살아가는 수도자 위선, 신자들 영혼 상처 입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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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6일 오후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태아동산’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곳에는 희생된 낙태아들의 묘를 상징하는 1000개의 흰 십자가가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같은 날 교황이 음성 꽃동네에서 한 아기의 입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어 주며 웃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사코 앉지 않았다. 선 채 아이들의 율동을 바라봤다. 언제나 그렇듯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서였다. 교황 앞에서 율동을 하는 11명은 근무기력증·다운증후군 등을 앓는 충북 음성군 꽃동네의 장애 아동이었다. 4개월 동안 연습한 율동을 교황 앞에서 선보이는 중이었다. 설 수 없는 앞의 두 명은 앉아서 율동을 했다.

 첫 곡이 끝나고 두 번째 곡 간주가 나올 때 제일 앞에 앉아서 율동을 하던 차해준(10)군이 말했다. “교황님 사랑해요.” 그러곤 엉금엉금 교황에게로 기어갔다. 예정에 없던 행동이었다.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다른 아이들도 교황에게 안겼다. 교황은 아이들을 안고 머리에 입을 맞췄다.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 교황의 미소가 전염된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교황도 똑같이 따라 하며 화답했다.

17일 오전 충남 서산 해미성지를 찾은 교황이 지난 15일 세월호 유족이 건넨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낡은 가방을 직접 든 채 행사장을 찾았다. [사진공동취재단]

 16일 오후 충북 음성군의 복지시설 꽃동네에 일어난 일이다. 꽃동네 방문은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을 보고 싶다”는 교황의 뜻에 따라 이뤄졌다. 교황은 이날 오후 성인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꽃동네 ‘희망의 집’에서 노인 환자와 장애 아동·어른, 입양을 앞둔 아기들을 만났다. 교황은 80여 명과 악수를 하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했다. 한 아기는 교황의 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교황은 꽃동네의 ‘태아동산’으로 이동했다. 희생된 낙태아의 묘소를 상징하는 1000개 흰 십자가 앞에서 3분 동안 고개 숙여 기도했다. AP통신은 “교황이 침묵 기도를 통해 강력한 낙태 반대 메시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태아동산에서는 팔·다리 없이 태어나 선교사가 된 이구원(25)씨를 만났다. 이씨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교황은 허리를 숙이고 얘기를 들었다. 이씨는 교황에게 “자살률 1위인 한국에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 모인 국내 가톨릭 수도자 4500여 명 앞에서는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친다”고 말했다. “순전히 실용적이고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려는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생각해보라”고도 했다. 이어 “여러분의 주의를 흩어버릴 수 있고 추문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꽃동네 앞에는 오전부터 자녀를 동반한 가족 3만여 명이 몰렸다. 교황이 차를 타고 가다 중간중간 어린이들 머리를 쓰다듬거나 이마에 입 맞추는 모습을 보고는 자녀를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교황은 이날 꽃동네로 들어가는 길에 아이들 19명을 축복했다.

  음성=신진호·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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