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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혈액순환 촉진, 비만 예방 … 의자 치우니 활력 치솟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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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시간씩 서서 일하는 황혜정(가운데)씨가 동료들과 회의하는 모습. 황씨는 “서서 일하고부터 몸이 가벼워지고 업무에 집중이 잘 된다”고 말했다. 사진=김수정 기자

‘노인과 바다’의 저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의자 없이 책상 앞에 ‘서서’ 일했다는 점이다. 일의 집중도를 높이거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무직을 중심으로 책상 앞에 서서 일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다름 아닌 건강을 위해 ‘의자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것. 과연 서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 서서 일하기 열풍을 짚어본다.

사무실에서 ‘서서 일하기’ 바람

13일 오전 11시 경기도 성남의 모바일메신저업체 카카오 본사. 일반적인 사무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기저기 서 있는 일명 ‘스탠딩족’이 눈에 띈다. 이들은 가슴 높이까지 오는 스탠딩 책상 앞에 서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2012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을 다녀온 한 직원이 그곳의 서서 일하는 광경을 보고, 자신도 책상 위에 박스를 올려 서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문화다.

커뮤니케이션팀 황혜정(여·27) 매니저도 그중 한 명. 한 달 전부터 하루 3시간씩 서서 일한다. 황씨는 “앉아서 일할 땐 목이 뻐근하고 배가 점점 나오는 것 같았는데, 서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척추·근육이 이완되고 몸이 가벼워졌다”며 “일에 집중도 잘된다”고 말했다. 서서 일하려는 직원의 요구가 늘자 회사는 높낮이를 조절하는 스탠딩 책상 150개를 희망자에게 지급했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서서 일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몸을 망가뜨린다는 사실이 알려지고부터다. 앉아 있는 것을 ‘새로운 흡연(The New Smoking)’이라 부를 정도다. 서울아산병원 스포츠건강의학센터 진영수 교수는 “최근 1~2년 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수록 건강에 해롭다’는 해외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이 건강을 위협한다는 이론은 꽤 오래전부터 언급돼 왔다. 1953년 영국 의학전문지 란셋(Lancet)에는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버스 차장이 앉아서 일하는 버스기사보다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1시간 앉아 있으면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125% 증가한다는 내용의 논문도 있다.

앉아서 일하면 심혈관질환 위험

문제는 혈액순환이다. 강동성심병원 심장혈관내과 이준희 교수는 “장시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면 다리 쪽을 순환하는 혈액이 정체되면서 심하면 혈전(핏덩어리)이 생긴다”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에는 나이트릭옥사이드(NO)처럼 혈관을 넓히는 물질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서다. 심뇌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동맥경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비행기를 장시간 타면 다리 정맥에 혈전이 발생해 심장으로 들어가 폐동맥을 막는다. 이 같은 폐색전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체내 대사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선 인슐린 관련 세포의 활동이 둔해지면서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진다. 인슐린 저항성은 체내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기능이 떨어진 것을 뜻한다. 당뇨병·대사증후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김상욱 교수는 “장시간 앉아 일하면 체내대사율이 감소하고, 칼로리·지방 소모가 낮아 비만 위험이 높아진다”며 “비만과 인슐린 저항성으로 대사증후군(고혈압·고지혈증·복부비만·동맥경화증 등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나 심혈관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3시간 서 있으면 144칼로리 소모

반면 서서 일하는 것은 혈액순환은 물론 척추건강과 각종 성인병 예방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준희 교수는 “서 있으면 다리 근육에 힘이 들어가 혈관이 수축·이완하므로 혈액순환 등 대사활동이 활발해진다”고 말했다.

허리에 실리는 부담도 줄어든다. 중앙대병원 정형외과 송광섭 교수는 “앉아서 일하면 허리에 몸의 하중이 집중되고, 허리·목이 앞으로 굽으면서 척추에 무리가 간다”며 “반면 서 있을 땐 상대적으로 하중이 분산되거나 뒤쪽으로 이동하면서 디스크에 압력이 덜 가고 허리·목이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척추 주변 근육도 강화된다.

운동하는 효과도 있다. 지난해 영국 체스터대학 존 버클리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 3시간씩 서서 일하면 144칼로리가 소모되고 1년에 약 3.6kg의 지방이 연소된다. 진영수 교수는 “서서 일하기의 핵심은 결국 ‘움직임’이다. 앉아 있을 때보다 몸의 움직임이 많아지면서 비만·성인병 예방, 신진대사·혈액순환·두뇌활동 촉진 등의 운동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서 일하는 것이 ’100% 정답’은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마트 계산원·백화점 점원처럼 장시간 서 있는 것 역시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동경희대병원 혈관외과 조진현 교수는 “서 있으면 동맥이 늘어나면서 혈액순환이 좋아지지만 정맥은 피가 쏠려 혈관이 부풀어 올라 하지정맥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척추관협착증·퇴행성관절염·저혈압 환자는 오래 서 있으면 오히려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오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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