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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 벗삼아 무병장수|90이 넘어야"노인 대접"-충북 영동군 상촌면「장수마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아무래도 염라대왕이 장부 한장을 덤으로 넘기신 모양이여-』 나이70이 중년이요, 80에 들어 초로(초로)길, 90을 넘어야 비로소 노인네 대접을 받는 마을이 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장수마을」. 지금껏『장수 만세』「프로그램」에 나가본 할머니·할아버지는 한명도 없지만 90넘어 수(수)를 누리는 노인만 20명이 되는 숨은 장수마을이다.
『그 양반 눈 감은게 벌써 10년이나 되는구먼. 건너 물한부탁 정 노인은 백여섯을 살았어. 아흔고개 들어서도 펄펄 날았고 게다가 말술에 줄담배였지. 늙은이 숨 쉬는건 장담을 못해요.』
박씨같은 건치(건치)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옛 일을 들려주는 김칠순 할머니의 주민등록번호는 810608∼0386612. 올해 1백세로 상촌면 최고령자다. 김 할머니가 찬 손목시계는 게딱지만한 전자 시계. 「보턴」을 눌러 시간을 볼만큼 눈이 밝다.『증손자 생일까지 먼저 알고 일러주십니다. 시아버님 젯날도 잊는 법이 없지요.』 며느리 박길희씨는 시어머니의 정신이 아직도 맑고 잔병치레가 없다고 한다. 며느리 박씨의 올해 나이는 67세. 7년 전에 환갑상을 받은 호호백발 며느리다.
두 노인네 모두 서른을 갓 넘어 혼자 몸이 되어 40년 가까이를 고부가 한방을 쓰는 안방마님들. 1천4백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90을 넘긴 노인 중 할머니가 17명, 할아버지는 3명으로 할머니들의 장수가 돋보인다.
건강하게 수를 누리는 비결을 물으니 첫째가『물외건곤(물욕 떠난 세상) 에 식보권농(밥 잘 먹고 부지런히 농사짓는 일) 』이라고 답한다.
둘째가「장수천(장수천)」으로 불리는 마을 앞 초강천 물맛을 든다. 『저래 봬도 산삼 썩은 물이여. 약수 중의 약수지.』아직도 쇠꼴 한짐 쯤 거뜬하다는 남만구 할아버지(80)의 말이다.
상촌면의 주봉 상도봉 별칭이 약초봉(약초봉)이고 보면 그 아래 흐르는 초강천이 불로수란 말이 파장만은 아닐 것 같다.
젖무덤처럼 부드러운 능선이지만 계곡의 깊이나 올울한 수림은 여느 장산(장산)에 못지않아 시호(시호) 오배자(오배자) 오가피(오가피) 등 한약재와 더덕·도라지 등 산나물이 무진장으로 깔려있다.
죽은 소나무 뿌리에 8∼10년씩 묵은 송진이 뭉쳐생기는 상촌복령(복령)은 약재상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진재(진재).
땅속2m까지 파 들어가야 한 덩어리를 캐낼 수 있는 복령을 상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릴적 처녀 총각 때부터 장복해왔다. 『사람 사는 동네에 으례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 마을엔 참병(참병)이 없지요.
복령을 먹으면 신장·심장이 튼튼해지고 임질을 예방하는 법이여.』김 할머니는 오배자로 치통·치질을 막고 시호로 학질을 떼버려 약초봉 덕분에 무병 장수촌이 된 것 같다 고했다.
약초봉·초정천이 장수의 비방(비방)이라면 마을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장수비결일 수도 있다.
마을 주성 (주성)인 고역 남씨 일족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5백여년 전인 조선 세조 때.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남금의 장남 남의문은 사화에 휩쓸려 죽고 무인 이천 서씨는 9살난 아들 세지를 안고 이곳에 정착한다.
일문(일문)의 참변으로 벼술에 환멸을 느낀 서씨는 임종자리에서 『자손들은 벼슬길에 나서지 말고 오직 만자 천손(만자천손)만을 도모하라』고 유언한다. 그후로 남씨 가문엔 화가 없이 90을 넘긴 사람이 많았다고 남씨 14대손 남병용씨(75) 는 전한다.
일제 대의 제2차대전과 가까이는 6·25등 전란을 겪으면서도『가까운 듯하면서 외지고, 외진 듯 하면서 숨어든』지형 때문에 별로 큰 전화를 입지 않은 것도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태어나 92년을 살면서 상촌 밖 구경을 한번도 못했다는 남선자 할머니는 TV덕분에 요즘 세상을 본다고 한다. 『나는 장구치고 소리하는게 제일 좋아. 매일 하는 극도 보는데 장미희가 맘에 들어』
오래 살다보니 앉아서 코쟁이도 보고 세상 변하는거 알게 되었지만 장수가 남들 부러워하는 것처럼 복(복) 만은 아니란다.
『자식들한테 너무 신세지는 것도 주착이야…』60년을 하루같이 홀어머니를 모시는 3남 김교생씨(58)는 살림 형편에 잡숫고 싶은거 모두 해드리지 못해 안타깝지만 노모 봉양에 힘든줄을 모른다고 했다.
『제 환갑상 받는 것도 보셔야지요. 오래오래 사시는게 자식에게 주는 복이지요)함께 늙는 모자의 정이 더 없이 도타와 보인다.【영동=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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