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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는 나를 독살하려는 일본 밀정” 전전긍긍한 푸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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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29면

만주국 황제에 취임하기 위해 뤼쑨(旅順)을 떠나기 직전의 푸이(오른쪽 둘째) 형제와 황후 완룽 남매. 1931년, 겨울. 완룽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자 일제는 푸이도 일본 여인과 결혼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눈치를 챈 푸이는 서둘러 탄위링을 귀인으로 맞이했다. [사진 김명호]

자금성에서 쫓겨난 푸이(溥儀·부의)가 톈진의 일본 조계에 거처를 정하자 옛 신하(遺老)들이 몰려들었다. 한결같이 후사(後嗣)를 걱정하며 부인 감을 물색했다. 푸이의 생부 자이펑(載灃·재풍)은 자식의 결함을 잘 알았다. “소용 없다”며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말렸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자 다들 뜻을 접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7>

푸이는 황후 완룽(婉容)을 비롯해 5명의 부인이 있었다. 소생이 없다 보니 성 불구자, 호모 등 별 소문이 다 나돌았다. 마지막 부인이었던 리수셴(李淑賢·이숙현)의 구술에 의하면 호모는 아니었다고 한다.

푸이를 만주국 황제에 앉힌 일제(日帝)도 푸이의 신체적 결함을 알고 있었다. 후작의 딸 사가 히로(嵯峨浩)와 푸제(溥杰·부걸)의 결혼을 추진했다. 덕혜옹주와 가쿠슈인(學習院·학습원) 시절 한 반이었던 사가는 괜찮은 여자였다.

일본 관동군은 푸제와 탕스샤(唐石霞·당석하)의 이혼부터 서둘렀다. 상하이에 있는 탕스샤를 수소문했다. 소재가 파악되자 회유에 나섰다. 정보참모가 거금을 들고 탕스샤를 찾아갔다. 탕스샤는 회유할 필요가 없었다. 이혼 소송 서류를 내밀자 낭랑한 목소리로 “不敢請 固所願(불감청 고소원)”, 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바라던 바라며 맹자(孟子)의 한 구절을 읖조렸다. 말이 부부지, 청나라 황실과는 남이 된지 오래라며 선뜻 도장을 찍어줬다. 금품도 거절했다. “중국인 난봉쟁이들 등 처먹는 게 떳떳하다. 일본인이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

일제가 푸제와 일본 여인의 결혼을 획책한다는 소문이 떠돌자 푸이도 앉아만 있지 않았다. 만주 귀족의 후예 중에서 제수 감을 물색했다. 문제는 푸제였다.

푸제는 사가에게 한눈에 반했다. 사가도 푸제를 좋아했다. 푸제 얘기만 나오면 얼굴을 붉히며 방으로 뛰어들어가 콧노래를 불렀다. 푸제는 푸이의 만류를 한 귀로 흘려버렸다. 1937년 4월 3일 도쿄의 군인회관에서 사가와 결혼식을 올렸다.

1년 후, 일본 관동군은 푸이를 압박해 만주국 제위계승법에 서명을 받아냈다. “만주제국의 황제는 강덕(康德·푸이의 연호)황제의 아들과 손자가 대를 이어 계승한다. 장자계승을 원칙으로 한다. 장자가 없을 때는 장손이 계승한다. 장자와 장손이 없으면 차남과 그 자손이 계승한다. 황제에게 아들과 손자가 없으면, 형제와 형제의 자손들이 계승한다.”

뭇솔리니와 히틀러가 만주국을 승인하자 푸이는 의기양양했다. 만주국 황제의 대를 이을 황태자를 보겠다며 여인을 물색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17세 소녀 탄위링(譚玉齡·담옥령)을 귀인(貴人)에 봉했다.

푸이가 찍은 탄위링. 연도 미상.

푸이는 탄위링을 총애했다. 푸이의 내면세계만 연구한 사람이 재미있는 분석을 한 적이 있다. “남자들은 좋아하는 여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한다. 푸이는 촬영을 좋아했다. 평생 수 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직접 찍은 탄위링의 사진이 33장 남아 있다. 황후 완룽의 사진은 8장에 불과하다. 이 점만 보더라도 푸이가 탄위링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1942년, 탄위링이 병으로 죽자 일본인이 독살했다고 굳게 믿었다. 마지막 황제는 죽는 날까지 탄위링의 사진을 품고 다녔다.”

푸이는 사가와 함께 나타난 푸제를 경계했다. 사가가 자신을 독살하기 위해 일본이 파견한 첩자라고 단정했다. 푸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은 동생들과 식탁을 마주했다. 사가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항상 새로운 요리를 한 가지씩 들고 왔다. 푸이는 푸제가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젓가락을 댔다. 탄위링과 여동생들에게도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가가 만든 음식에 독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 푸제가 먹기 전에는 절대 먹지 마라.” 푸제가 빠지는 날은 갑자기 속이 불편하다며 배를 부둥켜 안았다. 여동생들에게 한 눈을 찡긋하고 일어섰다.

사가가 임신하자 푸이는 초조했다. 푸제를 불러서 화를 냈다. “네 처는 일본 밀정이다. 관동군은 일본인 혈통을 만주국 황제에 앉히기 위해 너를 일본여자와 결혼시켰다. 네 아들이 태어나면, 나는 독살 당하고 너도 온전치 못하다. 애를 유산시켜라.”

푸제는 형의 말을 거역했다. 사가를 푸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사가가 딸을 순산하자 푸이가 가장 반가워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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