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8개월전 악몽 되살아 겁에 질린 듯 효주양, 범인과의 대면서 말문 못 열어|상처 잊어 가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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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산=고정웅·채흥모 기자】부산 효주양 납치범 검거는 한 시민의 고발정신과 과학수사의 개가였다. 범인 이원석이 붙들리게된 결정적인 동기는 그의 친구 Y모씨(27)의 제보였다. Y씨는 지난12월초 부산시경에 『이가 자가용차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번호판을 자주 바꿔 달고 영업행위를 하니 수상하다』는 제보를 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지난 12일 밤 11시쯤 그가 묵고있던 하숙집(부산시 망미동 794·주인 김상진·41)을 덮쳐 검거, 14일 상오 진범으로 밝혀냈다.

<범인주변>
범인 이는 병역기피자로 일정한 직업 없이 혼자 떠돌이 생활을 해왔으며 아버지는 2살 때 사망했고 어머니는 5살 때 개가, 거의 고아처럼 자랐다. 고향인 김제에는 형과 결혼한 누나가 살고있다.
이는 10여년 전부터 위장병을 앓아봤으나 돈이 없어 치료도 받지 못했고 「스페어」운전사·화물자동차 조수 등으로 근근히 살아왔다.
이는 67년 순천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뒤 부산·서울 등지를 돌아다니며 절도·불량배 짓을 일삼았다.
지난 1일에는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에서 경리직원이 들고 나오는 돈 보따리를 들치기, 추적 당하자 식칼을 목에 대고 접근을 막으며 달아난 적이 있으며 지난달에는 서울 갈월동 일대에서 사귄 깜장(26), 갑진이(27) 등과 일당이 돼 전국을 무대로 훔친 차량에 위장번호판을 달고 도둑질을 해오다 경찰 정보망에 걸려들었던 것.
이는 효주양이 너무 귀엽고 말을 잘 들어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으며 대통령의 특별담화가 있었고 아무래도 곧 잡힐 것 같아 풀어주었다며 『죽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했다.
범인 이는 검거된 후 10여장의 어린이 사진가운데서 효주양을 바로 찾아냈다.

<범행준비>
범행에 사용된 감색「포니」승용차는 마산시 산호동 6의67 공정자씨(36·여)의 소유로 범인 이가 범행 6일전인 79년 4월 8일 공씨 집 앞에 세워둔 것을 훔친 것이다.
범인 이는 4월 14일 상오 8시20분쯤 부산시 중구 대청동 남성초교 후문 앞에서 차를 세워놓고 등교하는 효주양을 기다리며 차량번호판을 경남1나1308호를 부산1나8328호로 바꿔 달아 위장했다.

<검거경위>
우연한 제보가 대어를 낚았다.
지난 1일「훈이」「갑진이」「깜상」으로 통하는 3명이 차량을 전문적으로 훔친 뒤 번호판을 바꿔 달며 범행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전담반은 이들의 별명을 갖고 추적, 강릉·묵호·전주 등지에서 탐문수사결과 3명이 모두 최근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조사결과 「깜상」과 「갑진이」는 「알리바이」가 성립되었고 나머지 「훈이」(범인)에게 혐의를 두고 비밀리에 「훈이」의 「몽타주」를 만들어 추적했다.
그의 고향인 전북 김제군 금구면 선암리 48에 확인 결과 그는 운전기술이 있는 전과자로서 76년 부산시 주례동에 기류된 뒤 주민등록이 직권 말소된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12일 밤 11시쯤 부산시 망미동 통합병원 옆 골목길에서 「훈이」가 지나가는 것을 처음 발견, 미행 끝에 그의 하숙집에서 검거했다.
경찰은 이의 지문을 치안본부 감식계에 전송, 범행직후 효주양 집으로 보낸 협박문에서 채취한 지문과 대조한 결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냈다.
경찰은 또 이의 필적과 협박문을 대조한 결과 역시 동일한 것으로 밝혀냈다.
범인 이가 사건직후 효주양 집으로 보낸 협박문에 그의 지문이 남겨져있었으며, 그가 효주양의 필체를 본따 직접 쓴 협박문의 서두인 『엄마 아빠』부분 가운데 『아빠』라고 쓴 글씨와 그가 검거된 후에 쓴 『아빠』라는 글씨가 똑같았다.

<납치 및 도피경위>
효주양을 납치하기 4일전인 4월 10일 범인 이는 하수인을 물색하기 위해 용두산 공원에서 배회 중 서필규씨(27)와 만났다. 일자리를 찾는다는 서씨에게 『나하고 같이 일하자고 월수 30만원을 보장하겠다』고 제의했다.
서씨가 『일은 뭐냐』고 묻자 범인 이는 『나는 흥신소에 다니는 사람이다. 남편과 헤어진 돈 많은 과부가 두고 온 애를 보고싶어하는데 그때그때 데려다만 주면 된다』고 꾀어 함께 일하기로 합의한 뒤 이들은 다음날인 11일 남성초교 앞에서 대기했다.
이때까지도 서씨는 이의 목적을 눈치 못 챘다.
그날은 효주양을 발견 못한 채 두 사람은 헤어졌고 서씨는 그 이후 이와 연락을 끊어 범행은 이 혼자 이뤄졌다.
12, 13일은 효주양 주변을 탐색했고 14일 상오 8시20분 마산에서 훔친 부산1나8328호 「포니」밤색승용차에 효주양을 납치했다.
범인 이는 효주양을 태워 부산∼울산고속도로에서 붕대로 눈과 입을 가린 뒤 다시 부산시내로 돌아와 학장동 광명목재 앞에서 승용차를 버렸다. 이는 이미 4.5t「복사·트럭」(4713호)을 대기시켜 놓았다가 옮겨 태웠다.
15일 부산∼양산간 도로에서 효주양 입의 붕대를 풀고 어머니에게 보내는 녹음을 시켰다. 녹음내용을 들고 근처 공중전화「박스」안에서 범인은 효주양의 친구 집으로 전화를 걸어 녹음내용을 틀어주었다.
범인은 18일 효주양을 풀어줄 때까지 계속 차안에서 자고 먹었으며 여관 등엔 한번도 들지 않았다.

<효주양 집>
유괴범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15일 상오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3가353 효주양은 아침식사도 제대로 들지 않은 채 아버지 정연태씨(42) 어머니 염규자씨(42)와 함께 경찰의 안내를 받아 부산시경수사본부에 나가 범인을 확인했다.
효주양은 두 번씩이나 겪은 유괴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평소 밝고 명랑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경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설레설레 흔드는 것으로 답변했다.
부모들은 『2차 유괴사건 후 1년8개월이 지나 당시의 기억이 차차 사라져가고 있는데 범인이 잡혀 아픈 상처가 새삼 되살아 나는 것 같다』고 괴로워했다.
효주양 주변>
두 번씩이나 흉악범에게 유괴돼 세상 부모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정효주양(11)은 현재 부산시 중구 대청동1가91 남성초등학교 4학년으로 국내 굴지의 문창수산주식회사(부산시 중구 충무로1가30) 대표이사인 정연태씨와 어머니 염계자씨 사이의 3남1녀중 막내이자 외동딸.
효주양은 성적이 뛰어나고 성격도 활발한 편이며 77년에는 자신이 부른 동요「레코드」를 내기도 했다. 1차 유괴되었다가 돌아온 78년 10월 15일 이후 효주양 집에서는 이름을 「주현」으로 바꿔 불렀고 집의 전화번호도 세 번씩이나 변경했으며 옷도 화사한 옷 대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것만 골라 입히는 등 또 다른 유괴를 예방하려고 신경을 써왔다.

<서필규씨 근황>
효주양 납치사건 때 범인 이로부터 범행가담 제의를 받았다가 경찰에 자수했던 서필규씨(24·부산시 신간동 시흥 아파트 105호)는 범인이 붙잡히자 『이제야 모든 것이 풀려 후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씨는 사건발생 후 한동안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며 용의자 대질·행인 살피기 등으로 직장도 잃은 채 곤욕을 치러야 했다.
『범인을 만났다는 것과 신고한 죄밖에 없었다』는 서씨는 14일 경찰에 출두, 유괴범 이를 대면하자 『바로 저 사람…』이라며 몸서리를 쳤다.

<대구교도소 복역 중>

<1차 범인 매석환>
1차 납치범인 매석환(40)은 현재 대구교도소에 수감중이다.
매는 효주양이 2차 납치된 직후인 79년 4월 18일 범인에게 효주양을 돌려 보내달라는 호소문을 쓰기도 했다.
매는 자신이 효주양을 다치지 않고 부모 품에 돌려보내 사회의 동정을 받았고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의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검거경찰>
이번 범인검거에 수훈을 세운 부산시경 강력계 최종영 경위·서정용 경사·우태국 경장·이주엽 순경·정박명 순경은 발생이후 지금까지 이 사건에만 매달린 전담반이었다.
그동안 연인원 4만8백60명의 수사인원이 동원된 이 사건은 범인이 차를 바꾸는 바람에 승용차만 검문 검색했던 초동수사의 「미스」도 있었으나 왼손중지 하나뿐인 지문을 근거로 범인을 확인, 추적한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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