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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대한민국의 고해성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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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5년(요한 바오로 2세 방한 이후) 만의 고해(告解)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오전 10시 30분 한국 땅을 밟는다. 염수정 추기경은 13일 교황 방한 축복식 강론에서 “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큰 기쁨이자 축복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어깨는 그 앞에서 출렁인다. 고해성사는 자신을 토해내는 일이다. 내 안에 박힌 상처와 아픔, 온갖 싸움의 파편을 드러낸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 때 우리 모두 울었다. 아직 울음은 솟아난다. 광화문광장의 유가족 농성은 시복식 와중에도 계속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은 지금도 피를 흘린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남북 분단의 상처에는 딱지가 앉을 줄 모른다. 보수와 진보로 쩍 갈라진 두 진영은 끊임없이 딱지를 떼내며 싸움을 재생산한다. 밀양 송전탑과 제주 강정마을, 쌍용차 해고자 등 이런저런 해법을 둘러싼 갈등의 골은 아득하기만 하다.

 최근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으로 군대 문화의 야만성이 드러났다. 하나가 되기보다 둘이 되고, 이웃이 되기보다 적이 되기를 바라는 게 우리의 민얼굴인가. 그 앞에서 대한민국의 어깨가 들썩이는 이유다.

 사람들은 말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서로 멱살을 잡고 죽기 살기로 싸운다고. 여와 야가 그렇고, 보수와 진보가 그렇고, 낮은 자와 높은 자가 그렇다. 공존의 화해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한쪽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싸움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식이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이 앓는다. 피가 돌지 않고, 기(氣)가 흐르지 않는다. 사회의 동맥경화를 해소할 리더십은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나침반이 필요하고, 이정표가 필요하고, 등대가 필요하다.

 하소연하고 싶은 참에, 기대고 싶던 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온다. 앞 다투어 손을 내민다. 내 병을 고쳐주시오, 내 상처를 쓰다듬어주시오. 내 문제를 풀어주시오. 애원하고 매달린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만능 열쇠’도 아니고,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대한민국 고질병을 수술대에 올리는 건 교황의 몫이 아니다. 교황은 그 위에 흐르는 메시지를 풀어놓을 뿐이다. 교황에게 우리의 숙제를 대신 풀어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다.

교황 방문 메시지는 대한민국 소통과 화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베드로 성당에서 파격적인 고해성사를 한 적이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교황은 일반 사제에게 달려가 고해성사를 했다. 예전에도 그런 교황은 없었다. 무릎까지 꿇었다. 나의 권위, 나의 입장, 나의 분노, 나의 이해를 내려놓지 않고서 인간은 무릎을 꿇을 수가 없다.

 국가 개조를 말하며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술을 하려면 먼저 상처를 드러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를 향해 이미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옵니다!”(라틴어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가톨릭 미사 때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는 말이다. 가톨릭 신자의 고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고해로 들린다. 취업난과 세대갈등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의 애환에 얼마나 눈을 돌렸던가. 이주 노동자와 미혼모 등 사회적 소수자에게 우리는 얼마나 각박했던가. 나의 입장, 나의 신념, 나의 진영을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상대를 해쳤던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너의 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라”고 말한다. 그건 전체의 눈이다. 그 눈을 통해 대한민국을 보자. 내가 뿜어냈던 독, 내가 휘둘렀던 칼이 결국 어디를 향했을까.

 경희대 송재룡(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도 그렇고, 국가나 사회 현안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도 절충이나 협상보다 갈등에 무게가 실린다. 소통과 화해를 강조하는 교황의 메시지가 반목과 대립 중심의 갈등 패턴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의 몫이다. 대한민국의 몫이다. 4박5일 방한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안겨줄 메시지는 값지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교황 방한을 디딤돌 삼아 대한민국이 성숙하기를.

◆고해성사(告解聖事)=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가 지은 죄를 뉘우치는 의식. 신부(神父)에게 죄를 고백하고, 신부가 부과한 적절한 보속(補贖·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일)을 행함으로써 용서받는다.

백성호·이정봉 기자

사진 설명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건 등으로 대한민국이 아파하고 있다. 분단의 진통과 이념·계층·세대 간 갈등은 오래된 숙제다. 오늘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보속(補贖?죄를 치유받는 방법)의 메시지를 던져 줄까. 사진=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일러스트 박용석,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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