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교 혁명의 「딜레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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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란」 혁명은 아직 초기의 불안정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란」혁명의 전황을 알아보기 위해 「테헤란」대학 국제 정치학 교수 「사이디」 박사를 찾아갔을 때 그는 『영어로 얘기해 본지가 오래돼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며 미안해했다.
「이슬람」 혁명의 반서구적 성격은 서구에서 공부한 학자들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났고 이들을 서구적 사고에 「오염」된 부류로 취급하게 되어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이학자의 서가에는 「유럽」 언어로 쓴 책이 한 권도 꽂혀 있지 않았다.
지난 여름방학이래 휴교중인 이 대학에는 교직원과 교수들만 보이고 학생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테헤란」 대학이 휴업하게 된 것은 대학 교과 과정이 너무 서구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이슬람」적 전통 위에 재조정한다는 소위 문화 혁명을 위해서라고 공식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의회에서 만난 한 학생은 실제로는 그 이유가 학생들이 「이슬람」 혁명의 지나친 종교적 편향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이디」 박사는 아직 「이슬람」적 교과 과정이 어떤 것이어야 되는지 구체적 지침이 나와 있지 않아서 교과 개정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면서 개학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 시내의 「스카이·라인」은 여기저기 건축중의 건물 위에 정지되어 있는 기증기의 엉성한 골격으로 압도되어 있다.
「샤」의 말기에 진행 중이던 건축 「붐」이 갑자기 중단된 채 건축과 골격과 장비는 2년째 녹슬고 있는 것이다.
공장들은 혁명과 함께 대부분 국유화되었고 기타 기업들도 일부 국유화되기도 하고 일부는 불황 속에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지만 간부진이 숙청되거나 출국해 버렸고 또 미국의 경제 봉쇄로 원자재 구입이 어려워 조업은 원활하지 못하다.
연간 2백50억 「달러」의 석유 수입을 부어넣으면서 계속되어온 「이란」의 경제 개발이 중단되고 있는 원인은 「이슬람」 지도자들이 아직 경제 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을 못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이디」 박사는 말했다.
특히 「이슬람」 혁명에 있어서 사유 재산의 범위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이냐는 문제와 은행 이자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중단된 경제 개발 작업이 다시 시작될 수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코란」은 「착취」를 죄악으로 규정짓고 있는데 「이슬람」 지도자들은 은행 이자가 바로 착취라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예금주들이 대부분 혁명이래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 버렸다. 그래서 모든 경제 행위에서 투자 활동이 최소한으로 줄어들고 있다.
「호메이니」가 정한 혁명의 기본적 방향은 대단히 야심적인 것으로서 제3의「이데올로기」창시라고 할 만한 것이다.
그것은 제3세계의 개발이 서구의 소비 문화를 「모델」로 할 경우 과거「샤」가 저지른 것 같은 예속과 국민의 분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란」의 능력에 맞는 수준에서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 된다는 것이다. 서구적 소비상품을 가진 자와 그것을 못 가진 자 사이의 아귀다툼을 피해서 「이슬람」적 정신주의를 국민생활의 기조로 삼으면 될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 초기 그는 6백만「배럴」의 석유 생산을 1백50만「배럴」정도로 격감해도「이란」의 필요에는 충분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이 중동에서는 가장 서구화 된「이란」국민들 사이에 받아들여 질 수 있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이 혁명은 초기에 극빈자들에게 땅과 집을 주었고 이 계층을 주된 세력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극빈자를 장기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경제 개발이 어느 수준에서건 다시 시작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구 문화에 오염된」 기술 관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에 「이란」 혁명의 「딜레머」가 있다. 전쟁 피해가 가중되면서 그런 「딜레머」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테헤란」 남부의 한 극빈자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 집주인은 난방 되지 않은 차가운 바닥을 손으로 짚으면서 『옛날보다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단편적인 의견을 가지고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현재처럼 경제 성장이 중단된 상태가 혁명 노선의 의도적 방향으로 굳어진다면 혁명의 주된 지지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란」 혁명의 정신주의와 세속적 현실주의의 충돌이 조만간 표면화 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런 충돌이 절대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호메이니」가 살아있을 때 일어나서 무리 없이 절충되면 몰라도 「호메이니」 이후까지 미루어질 경우 「이란」에는 예견할 수 없는 여러가지 불행한 사태가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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