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천국「워싱턴」에|음식 축내는 불청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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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에선 1년 내내 매일 밤 세계 각국의 「파티」가 벌어진다. 현재 「워싱턴」에 자리잡고 있는 각국 대사관 수만도 1백50개. 북한·「베트남」등 극히 소수의 나라를 빼면 미국과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는 없기 때문에 어떤 날은 하루에도 5, 6개국의 「파티」가 동시에 열리기도 한다.
한 대사관이 1년 평균 5번 정도의 자국 국경일 「파티」를 갖는다면 「워싱턴」이 외교가에서 만도 연 7백50회, 하루 평균 2번의 각종 「파티」가 열리는 셈이다. 「워싱턴」이 이같은 『「파티」의 천국』이고 보니 자연히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파티」꾼들이 번성, 외교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파티」장마다 나타나 술과 음식을 축내고 가는 직업적 「파티」꾼들을 외교가에선 영어로 「파티·크래셔」라고 한다. 「크레시」(crash)는 미국의 속어로 『초청 받지 않고 끼어 든다』는 뜻이다.
현재 「워싱턴」에는 이런 「파티·크래셔」가 줄잡아 50여명, 「파트·타임」으로 뛰는「꾼」들도 1백명 정도 된다는 추산이다. 물론 이들은 한꺼번에 몰려 다니는게 아니고「파티」장의 분위기나, 음식의 질을 골라 다닌다. 보통 규모의「파리」엔 약 10여명, 1천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파티」엔 약 20명 이상의「파티」꾼이 나타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요즘은 물가가 비싸서 식사가 나오지 않는「리셉션」의 경우에도 술값·음식값·장소값 등 그럭저럭 참석자 1인당 약30「달러」정도의 경비가 들어간다. 어느「리셉션」에 가령 20명의「파티」꾼이 왔다면 주최측은 앉아서 6백 「달러」를 손해보는 셈이다. 그래서 각국 대사관의 관계자들은 이같은 불청객들을 골라내기에 골치를 앓고 있으나 그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우선「파티」꾼 일수록 옷도 근사한 정장을 하고 행동도 점잖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번쩍번쩍하는「액세서리」들을 달고 나타나는 할머니들도 많고,「파티」가 열리는「호텔」에 투숙하는 손님들이 슬쩍 들어오는 「아마추어」의 경우도 많다.
때로는 의심을 안 받기 위해 부부나 애인을 가장한 「커플」로 오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파티」장 입구에서부터 오히려 여유있게 점잖은 걸음을 걷고「매너」도 아주 세련돼 있다. 대개의 경우「포스트」인 대사가 문 앞에서 손님을 맞는데「파티」꾼들은『귀국의 국경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면서 깍듯한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연회장에 들어서면 이들은 그득히 쌓인 술과 각종 음식을 집중 공격한다.
접시에 진수성찬을 가득 담고 술잔을 들고 아예 구석 쪽「테이블」로 가 앉아 본격적인「만찬」을 즐긴다.
「파티」꾼들에겐 「교제」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워싱턴」에서 하루 평균 2회 이상의「파티」가 매일 열리는 셈이니 이론적으로는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1년 내내 저녁 값 안 들이고 살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파티」꾼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나라는 한국·일본·중국 등「아시아」및 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간 산유국들이다. 동양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손님 접대용 음식을 잘 차리고 중동 산유국들은 풍성한 「오일·달러」 덕분에 진수성찬이 많기 때문이다.
몇몇 나라에서는「파티」꾼들을 막기 위해 초대장을 들고 온 사람만 입장을 시키는 묘안을 짜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깜박 잊고 안 가져 웠다』, 또는『내 아들이 초청장을 갖고 오기로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울 수도 없고 실제로 초대장을 안 가지고 온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바람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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