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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왕' 해파리, 1㎜ 돌기 하나서 성체 5000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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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9일 충남 서천 춘장대 해수욕장에서 30여 명, 보령 대천 해수욕장에서 12명이 해파리에 쏘여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10일에도 이 일대에서 20여 명이 쏘였다. 해파리에 쏘이면 통증을 일으키고 피부가 붉게 변한다. 심하면 호흡곤란·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보령시보건소 이원욱(33) 대천현장진료소장은 “즉시 상처 부위를 물로 씻어내고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에 구조센터가 없으면 바닷물로 씻어낸 뒤 피부에 박힌 침을 긁어내야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윤원득 박사는 “수온이 따뜻해지면서 개체 수가 급증한 보름달물해파리가 피서객을 많이 쏜다”고 말했다. 보름달물해파리는 독성이 약하지만 독성 강한 노무라입깃해파리가 섞여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2012년 8월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노무라입깃해파리에 쏘인 8세 여자 어린이가 숨졌다. 해수욕장에 끼치는 피해와 어민들의 그물이 망가지는 피해 등 해파리는 연간 3000억원의 손실을 끼친다. 이에 따라 해경은 충남 서해안 해수욕장을 돌며 해파리를 제거하고 경고 방송을 하는 등 긴급 예방 활동에 나섰다.

 해파리 제거 방법을 찾고 있는 경기도 안산의 해양환경연구소를 지난달 25일 찾았다. 투명한 수조 속에서 지름 약 20㎝ 크기의 갓을 쓴 모양의 보름달물해파리 무리가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수조 바닥에는 초미니 백합꽃 모양의 하얀 돌기(지름 1㎜, 길이 3~5㎜)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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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소장인 채진호 박사는 “작은 돌기가 해파리의 폴립(Polyp)인데 엄청난 번식력은 이 폴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파리 암컷·수컷이 만든 수정란은 섬모를 지닌 플라눌라(Planula) 유생(幼生)이 된다. 헤엄치며 떠돌던 유생은 조개껍데기·자갈·콘크리트에 달라붙고 이것이 자라 폴립이 된다. 폴립은 입을 갖고 있어서 바닷물을 걸러 먹이를 먹는다. 폴립은 무성생식인 출아법(出芽法), 즉 작은 눈을 내어 숫자를 늘린다.

 늘어난 폴립은 다시 스트로빌라(Strobila) 단계를 거친다. 스트로빌라는 우리가 파인애플을 썰 듯 수평으로 조각조각 나뉜다. 이 얇은 조각이 에피라(Ephyra)다. 에피라 하나하나가 갓을 가진 메두사(Medusa), 즉 성체(成體) 해파리로 자란다. 해파리의 하늘거리는 촉수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결국 유생에서 나온 폴립 하나가 성체 5000마리가 되는 셈이니 번식력이 왕성하다.

해양환경관리공단 해양생태팀 김영남 과장은 “방조제 등 해양 구조물에 붙어 있는 폴립을 제거하는 것이 해파리 억제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생활사만큼이나 해파리는 많은 비밀에 싸여 있다. 최근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늘고 있는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지름 1m, 무게 200㎏이다. 이 해파리가 겨울철 어디에서 번식하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작은보호탑해파리(Turritopsis nutricula)는 미스터리 그 자체다. ‘영생불사(永生不死)’로 알려진 이 해파리는 성체가 상처를 받거나 환경이 나빠지면 촉수 등의 세포를 흡수해 폴립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1988년 처음 밝혀졌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어른이 아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닭이 달걀로, 나비가 애벌레로 되돌아 가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이런 전환분화(轉換分化·Transdifferentiation)가 밝혀진 것은 해파리 중에서 작은보호탑해파리가 유일하지만 연구는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해파리 개체 수가 급증하는 이유도 아직은 미스터리다. 일부에서는 20년 주기로 증감을 반복한다고 주장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채진호 박사는 “사람들이 물고기를 남획하고, 폴립이 붙을 수 있는 인공 구조물을 해안에 많이 설치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먹이 경쟁을 하던 물고기 수가 줄면서 해파리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해파리 서식 범위가 남북으로 확대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남획으로 물고기가 사라진 바다를 ‘죽지도 않는’ 해파리가 유령처럼 떠도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바다를 되살리라’는 경고를 해파리가 지금 우리 인류에게 발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찬수 기자 envirep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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