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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장관이 '우려교육' 안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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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사회에디터

현관예우와 일사천리의 전형이었다. 황우여 신임 교육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7일) 바로 다음 날(8일) 취임했다. 전례 없는 초고속이다. 청문회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들은 5선의 현직 선배를 예우했다. 교육장관 후보자가 필수로 넘어야 할 태산(논문)도 없었다. 일부 여당 의원은 ‘대표님’으로 부르다 멋쩍어했다. 야당 의원들조차 변호사 수임료나 직계 존비속 자료 부실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주로 따졌을 뿐이다.

 외형적인 ‘우려’는 없었다. 국회 교육위에 13년간 몸담았던 황 장관은 노련했다. 교육 다자간 협의체 구성이나 자율형사립고 문제 등 예민한 이슈는 “검토하겠다” “노력하겠다” “명심하겠다”며 의원들 화를 돋우지 않았다. 야당의 ‘송곳’인 안민석 의원조차 “유사 이래 가장 밋밋한 인사청문회”라고 했을 정도다. 학자 출신 김명수 전 후보자가 “30초만 숨 쉴 시간을 달라”며 만신창이가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황 장관에게는 넘어야 할 태산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역사교과서, 전교조, 진보교육감, 자율형사립고, 대학구조조정, 등록금, 사립학교법…. 갈등과 충돌이 심한 사안들이다. 황 장관도 사립학교법과 반값 등록금 등 여러 논란에 불을 지폈던 당사자였다. 그는 교육위 경력을 근거로 “교육을 한시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취재해 보니 발의한 법안은 통틀어 12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통과한 것은 1건(2002년 학교급식법 개정안). 더욱이 교육위는 ‘불량 상임위’의 대명사였다. 그래도 1996년 15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총 2352건의 법안이 접수됐다. 황 장관은 소속 의원 중 꼴찌였다. 당 대표 하랴, 원내대표 하랴, 지역구 챙기랴 바빴겠지만 본업 성적표는 그랬다.

 황 장관은 종종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는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옳고, 저쪽 말을 들으면 저쪽이 옳다고 했다던 황희와 그의 정치 스타일이 닮았다고 해서 나온 얘기다.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해 사회부총리를 겸하면 그의 성향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여러 의견을 듣는 것은 소통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게 보면 관후(寬厚)지 거꾸로는 줏대의 문제다.

 핵심은 소신과 신념이다. 들을 건 듣되 균형 있는 판단과 정체성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우려된다’는 말이 떠돈다. 황 장관도 이름이 엉뚱하게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단어의 어감상 이해할 만하다. 자초한 면도 있다. 2011년 원내대표 시절 반값 등록금을 앞뒤 안 가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치명적이다. 이제부터는 인기영합 발언은 금기다. 정치인의 말잔치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장관의 말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은가.

 황 장관은 여러 약속을 했다. ▶매달 학교를 방문하고 ▶교육감을 만나고 ▶자사고 논란에 신중 대응하고 ▶교육감 직선제 고민하고 ▶단원고 학생을 만나고 ▶대학구조조정 방향 재설정하고 ▶소득연계형 반값 등록금 완성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교육 업무는 현장성과 방향성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에둘러 표현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교육계는 기득권층과 관료들의 장막이 두텁다. 저항을 뚫으려면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영(令)이 서고 일이 돌아간다.

 황 장관은 시험대에 올랐다. 역대 교육장관 50여 명(부총리 포함)의 평균 수명은 1년 남짓이었다. 그가 평균을 넘어 2년 이상 일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2016년 4월 총선도 총선이거니와 쉽지 않아 보인다. 섭섭하다면 ‘무소신·무신념 정치인’이라는 딱지부터 떼버려야 한다. 5선의 경륜을 잘 활용해야 한다. 기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 비전, 그리고 리더십이 필요하다. 윗분 눈치를 보며 정치적 계산만 해서는 안 된다.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장관이 단단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이념과 갈등의 ‘교육지옥’에 빠지게 된다. 황우여(黃祐呂) 장관이 황우려(黃憂慮) 장관이 되는 것은 국민도 원치 않는다.

딱 한 가지만 지키면 된다. 교육장관의 마음은 대통령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를 향해야 한다는 것을. 황 장관의 숙제다.

양영유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