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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진옥섭 한국민속예술축제 예술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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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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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진용선(1963~ ) 『정선아리랑 가사사전』 중에서

시가 심장으로 써진다면 노래는 혀끝에서 피어난다. 노래의 운명은 혀와 귀의 검열을 받는 것. 부르는 이 혀끝에 돌돌 말리고, 듣는 이 귓불에 솔솔 스며야 하기 때문이다. ‘올동박’은 봄에 피는 노란색 생강나무다. 올동박의 ‘박’에서 마치 말뚝 박기처럼 심금에 한 박이 팍 박힌다. 사랑이 무르익은 연인이 못 만나는 애절함이 절로 녹아든다.

 민요란 나와 너와 우리의 소산이기에 씨알이 먹혀야 한다. 서로 말귀 알아먹는 사람끼리 알 만한 소리를 어깨 들썩이고 궁둥이를 치게 해야 한다. 그러니 노래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절묘한 수공인가. 전통음악과 춤의 명인들을 불러 모아 판을 만들면서 노래에 스민 피땀과 역사에 가슴 떨었다.

 『정선아리랑 가사사전』은 한민족에 굽이굽이 회자되는 시편을 묶은 것이다. 줄였다는데도 800쪽 분량이다. 묵직한 책을 받아드는 데 발자국 소리가 난다. 1988년부터 2013년까지 신작로가 아스팔트로 변해가는 격변의 시대에 흙먼지 묻은 무명시인의 숨소리를 수집한 것이다.

 나는 목젖 너머에서 밀려 나오는 이 입김 서린 언어가 좋다. 1865년 경복궁 중건이 아리랑 1차 증폭이요, 1926년 10월 1일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 단성사 상영이 2차 증폭이다.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고 증폭을 넘어 아리랑 홍수가 났는데, 이 한 권에는 볕이 들지 못했다는 슬픔. 그것이 시인의 천명인가. 진옥섭 한국민속예술축제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