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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관피아 적폐 청산이 뭐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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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내 진작에 이러리라 짐작 못했던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일이 되어 돌아가는 걸 보니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다. 점점 어긋나고 있는 ‘관료사회 적폐(積弊) 청산’의 약속 말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사고로 인한 패닉 상태에서 대통령이 ‘대안 있는 사과를 하겠다’며 한 달이나 공식사과를 끈 후 눈물을 쏟으며 약속했기에 관료도 정치권도 바뀌리라 믿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데 벌써 관가에선 관피아 척결은 모르는 얘기인 양 취급한다. 지난주 공직자 출신들의 재취업을 심사하는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심사대상자 85%의 취업을 승인했다. 차관급을 비롯한 고위층이 대거 대기업과 로펌으로 향했다. 청와대 행정관을 하다 금품 수수 등이 적발돼 공정거래위로 복귀했던 공무원도 대형로펌에 순탄하게 취업했다. 승인불허는 고위급보다 낮은 직급에서 많았다. 관피아 우려는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다.

 물론 우수 인재들이 민간에 들어가 기여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한데 관료를 마피아에 빗대가며 적폐를 걱정하는 건 이들이 민간에 나가 민관 유착고리를 만들고, 법의 집행을 왜곡시키며, 그로 인해 안전 사회와 효율적이고 공정한 사회 만들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고위관료 스카우트 경쟁도 청탁과 끼리끼리 문화가 상존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움이 낳은 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청탁문화를 근절하자는 ‘김영란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청와대와 여야 수뇌부가 금방이라도 통과시킬 듯 ‘쇼’를 한 게 무릇 얼마나 되었던가. 퇴직 공무원들의 연관 분야 민간기업 재취업을 제한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관피아 방지법)은 행방이 묘연하고, 대통령이 시급히 하겠다던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아직 상임위에 상정도 안 됐다. 여야 모두에 ‘적폐청산’은 립서비스가 된 걸까.

 이쯤 되니 슬그머니 국회로 의심의 눈길이 간다. 특히 요즘엔 정치인들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사건들이 출몰한다. 검찰이 관피아 수사 1호로 시작한 ‘철피아’ 수사는 두 달 만에 현직 여당 국회의원 연루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운전기사가 3000만원짜리 돈가방을 들고 와 신고한 국회의원 집을 뒤져보니 현금 6억원이 나와 역시 수사를 벌이는 중이다. 또 강서구에서 일어난 재력가 살인사건은 느닷없이 시의원·검사·정치권 연루 사건으로 둔갑하고 있다. 야당 중진의원 3명은 학원재단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럴 때면 야당 의원은 하는 말이 있다. ‘국면전환용 야당탄압’.

 한데 시민 입장에서 볼 땐 전혀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검찰이 패기 있게 성역 없이 수사해주기만을 고대할 따름이다. 또 관료와 정치인이 말로만 비장할 뿐, 실은 ‘적폐청산이 뭐예요?’라는 식으로 요즘 애들 말처럼 ‘생까고 있는(모르는 척하다)’ 듯 보인다. 살인사건을 쫓아올라가 보니 그 정점에 국회의원이 있었다는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가 실화처럼 느껴지려고 할 정도다.

 이 대목에서 적폐청산을 약속했던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하다. 이 장면이 생각난다. 4월 16일 세월호 구조에서 손을 놓았던 오전 10시37분, 청와대 관계자가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냥 적어’ 하며 전달한 VIP메시지가 “한 명도 인명피해 발생하지 않도록…”이었다는 것. 온 국민이 오전 중 알았던 세월호 상황을 오후 2시가 넘도록 대통령은 몰랐다는 것.

 지도층이 말은 크고 속 시원하게 생색내고, 현장은 무능하거나 곪아 움직이지 않고, 뒤는 챙겨보지 않아 적폐가 쌓이는 폐단이 만들어 낸 게 ‘세월호’이며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이다. ‘높은 분’들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거라며 목청을 높였다. 한데 그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또 말의 성찬이다. 한데 알아둘 게 있다. 국민들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는 것. 이젠 말뿐 아니라 실행 여부를 챙겨보기 위해 눈을 부릅뜨기 시작했다는 것 말이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