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기난사 이은 구타 사망, 육군 수뇌부 책임 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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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4월 육군 28사단에서 일어난 선임병들에 의한 윤모 일병 집단구타 사망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포병연대 의무대 선임병들이 4개월간 윤 일병에게 가한 가혹행위는 인간 존엄을 말살하는 수준이었다. 군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모 병장 등 4명의 선임병은 윤 일병에게 치약 1통을 다 먹도록 했고, 침상에 누워 입을 벌리게 한 뒤 물을 들이붓는 물고문 형태의 가혹행위를 했다. 내무반 바닥의 가래와 음식물까지 핥아 먹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일병은 음식을 먹다가 선임병들에게 폭행당한 뒤 숨졌다.

 어떻게 이렇게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가혹행위가 병영에서 자행되고 있는지 치가 떨릴 뿐이다. 병사의 안식처인 내무반에서 군사독재 시절의 고문과 다를 바 없는 야만적 행위가 일어난 데 대한 국민의 충격은 가시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의무대에서 유일한 간부였던 유모 하사도 가혹행위에 가담했고, 선임병의 후임병 구타는 대물림되고 고질화돼 있었다고 한다. 이런 군대에 어떤 부모가 아들을 보내고 싶겠는가.

 육군은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연대장과 대대장 등 간부 16명을 징계했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에 국민이 납득할 수는 없다. 가혹행위가 조직화·구조화되고 있는데도 이를 방치한 군의 책임은 막중하다. 사단장은 물론 육군 수뇌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동시에 가해 병사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환골탈태를 하려면 고통이 수반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군 검찰은 선임병들에게 상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군인권센터의 주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병영은 지금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최소 전투 단위인 소대와 내무반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군 당국이 지난 4월 한 달 동안 육군 전 부대를 대상으로 병사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가혹행위 가담자가 39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폭력, 구타 등 가혹행위와 더불어 심각한 폭행도 적발됐다. 구타와 따돌림이 만연하는 병영에서 선·후임병 간 올바른 기강과 신뢰는 요원하다. 지난 6월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일어난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도 내무반 선·후임병들의 집단 따돌림에서 비롯됐다. 이 사단에서는 지난달 27일 신모 이병이 영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졌고, 같은 날 중부전선 3사단에서도 박모 이병이 자살했다. 병사들이 동료 총에 맞아 죽고 가혹행위로 희생되는 군을 갖고 전투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군은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병영문화 쇄신을 약속했지만 공염불이 되고 있다. 땜질식 처방을 해온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가혹행위와 집단 따돌림, 관심병사 실태에 대한 전면적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병영을 새로 세운다는 자세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군은 건강하고 건전한 병영 문화에 전투력이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