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어중간한데 왜 강남 가나 … 정시형 인재만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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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전문가로 활약하는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 그는 “입시든 기업 분석이든 큰 흐름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애널리스트.

 투자자들을 위해 기업과 증권을 분석해 주는 전문가를 일컫는다. 기업의 정확한 가치를 따지는 정밀함과 미래를 읽는 통찰력도 필요한 직업이다. 16년차 베테랑 애널리스트 김미연(38)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에겐 증권만큼 중요한 분석 대상이 있다. 대학 입시다.

 계기는 2011년 ‘교육의 정석’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낸 것이었다. 100쪽이 넘는 두툼한 보고서는 당시 교육부가 내놓은 입시정책을 정밀하게 해부했다. 교육업체 ‘메가스터디’의 주식이 투자할 만한지를 따지기 위해서였다. 결론은 사실상 ‘사지 말라’였다. 수시 전형의 비중이 늘고, 수능도 EBS 교재와 연계 출제돼 사교육 기업은 더이상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투자자만큼 이 보고서에 열광한 사람들이 있었다. 학부모들이다. 그들은 메가스터디의 주가 전망보다 입시 전반에 대한 일목요연한 분석 에 주목했다. 난마처럼 얽힌 입시를 속시원히 풀어냈다는 입소문에 이 보고서는 다운로드 건수만 2만 건을 넘겼다.

 어느새 그는 여의도 밖에선 입시전문가로 통한다. 매년 입시의 방향과 주요 대학 입학 요강을 해설한 책을 내고, 전국을 돌며 강의도 한다. 지난해에는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초청으로 제일모직과 제일기획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입시 얘기를 할 때만큼은 독설가다. “저는 솔직하게 막 얘기해요. 돈 받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얼마 전 네 번째 『교육의 정석』을 펴낸 그에게 올해 입시전략을 물었다.

지난달 열린 입시설명회에서 강연하고 있는 김 연구위원과 그가 펴낸 『교육의 정석』 표지.

 - 다음달 6일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다. 합격 비법은 없나.

 “차라리 교회에 가서 기도해라. 수시는 벼락치기로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신성적은 이미 다 결정돼 있고 논술실력은 갑자기 나아지지 않는다. 구술면접은 연습하면 좀 늘긴 하겠다. 하지만 그것도 평소에 준비가 잘 돼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비법이나 ‘신의 한 수’ 같은 건 없다.”

 김 연구위원은 학부모를 상대로 강연을 나가면 우선 서울대의 정시와 수시모집 비율부터 보여준다. 정시로 뽑는 인원이 4명 중 1명(24.9%)꼴에 불과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왜일까. “학부모나 학생들 중 아직도 ‘수능만 잘 보면 좋은 대학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매년 책을 펴내고 입시설명회를 하는 이유 역시 그런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 요즘 입시 트렌드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다양화다. 수능 외에도 학생부·면접·논술·입학사정관 등으로 학생을 뽑겠다는 거다. 수시모집 확대, 수능 EBS 연계 출제 같은 정책이 모두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시험으로만 대학을 가던 시절에는 꼴찌들도 학원을 다 녀야 했다. 그런데 대학을 가는 길이 다양해지면 수능점수가 좀 떨어지는 학생들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러니 사교육 시장이 죽을 수밖에 없다. 2008년 38만원이던 메가스터디 주가가 지금은 6만원까지 떨어진 이유다.”

 - 정시와 수능에만 목매지 말라는 얘기인가.

 “입시는 확률을 높이는 게임이다. 올해 대학 정원의 65.2%는 수시로 뽑는다. 모든 과목을 두루 잘해야만 대학 가는 시대는 지났다. 포스텍은 신입생을 100% 수시로만 선발한다. 서울대 신입생의 절반을 뽑는 수시 일반전형은 수능성적을 아예 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만의 가능성을 보여달라는 거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은 ‘공부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학력고사 세대의 사고방식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을 발표했다. 대학마다 제각각인 전형방법을 올해 입시(2015학년도)부터 수시는 4개(학생부 교과·학생부 종합·논술 위주·실기 위주), 정시는 2개(수능 위주·실기 위주)로 줄이도록 한 것이다.

 - 간소화했다는데 정작 학부모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학교마다 전형의 명칭이 다 달라서 그렇다. 예를 들어 수시 학생부 교과 전형을 서울대는 ‘지역균형 선발 전형’이라고 하고, 고려대는 ‘학교장 추천 전형’, 연세대는 ‘학생부 교과 전형’이라고 한다. 헷갈릴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정말로 간소화할 의지가 있다면 전형 명칭도 통일해야 한다.”

 김 연구원은 ‘정시형 인재’와 ‘수시형 인재’는 다르다고 했다. 정시형 인재는 전 과목 골고루 다 잘하고 시험에 강한 아이들이다.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주식으로 치면 쑥쑥 가치가 오르는 ‘성장주’다. 수시형 인재는 좀 다르다. 학생부 교과 전형에 지원하려면 3년 내내 내신이 좋아야 한다. 착실하긴 하지만 논술이나 면접에는 약한 아이에게 맞는 전형이다. 주식으로 치면 안정적인 ‘가치주’다. 그는 “정시형 인재는 강남에서 키우면 된다. 수능은 강남 학원들이 제일 잘 가르치고, 어차피 정시에선 내신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부 교과 전형이 맞는 아이들은 강남 가면 주눅이 들어 오히려 입시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공부를 어중간하게 하는 아이들은 강남으로 보내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수시 일반 전형은 논술과 수능·내신을 모두 보는 ‘3D 입체 전형’이다. 정시와 수시를 같이 준비하는 학생들이 주로 지원한다. 학생부 종합 전형은 옛 입학사정관제다. 수능과 논술을 거의 안 보는 대신 꿈이 확실하거나 특정 분야에 잠재력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아이가 어떤 유형인지를 고민해 보는 게 중요한 이유다.

 -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 대학’의 수시에선 어떤 학생들이 유리할까.

 “서울대 수시는 구술면접이 중요해 특정 분야에 꽂힌 ‘오타쿠’형이 유리하다. 얼마 전 만난 고3 학생은 ‘서울대 지역균형 선발 전형에 지원할 건데 무슨 과를 쓰는 게 좋겠느냐’고 묻더라. 그건 본인이 결정해야지. 이 아이는 인생의 목표가 그냥 서울대 입학이었던 거다. 내가 서울대 교수여도 그런 학생은 불합격이다. 입시는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연세대는 특별전형으로 전체의 28.7%를 뽑는다. 외국어나 수학·과학을 특별히 잘한다면 연세대가 문이 좀 더 넓다는 얘기다. 내가 아는 대원외고 학생은 수학은 8등급인데 영어와 음악을 잘해서 연세대 테크노아트학부에 특기자 전형으로 들어갔다. 고려대는 학생부를 많이 보는 학교장 추천 전형(16.7%) 비율이 높다.”

 - 의대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데.

 “의대는 좀 다르다. 수능점수가 대략 상위 1% 안에 들어야 하고 내신성적도 좋은 ‘수퍼맨’이 돼야 한다. 대부분 의대가 수시모집에서도 높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를 지망한다면 인성면접도 준비해야 한다.”

 - 중학생이나 고 1~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지금부터 뭘 준비해야 할까.

 “그 나이 대에는 꿈은 있는데 딱히 노력은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에겐 그 분야의 롤모델을 만나게 해 줘야 한다. 요리사가 꿈이면 사돈에 팔촌을 동원해서라도 성공한 셰프를 만나게 해 줘라.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서 그 자리까지 갔는지 직접 들어봐야 한다. 나는 애널리스트가 꿈인 학생들이 오면 종일 옆에 앉혀놓고 일을 시킨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물 마실 틈도 없이 일한 뒤에 다시 물어본다. 정말로 하고 싶으냐고. 그래도 하고 싶다고 하면 그건 진짜다. 그리고 특목고에 가지 않더라도 특목고 자기소개서는 꼭 써보게 하라.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고등학교 3년간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 입시를 위해 특목고를 가는 게 유리한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대원외고는 지난해 서울대 합격자의 66%가 수시모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일반고인 경기고는 26%밖에 안 된다. 특목고와 일반고는 수시를 대비하는 수준이 다르다. 특목고는 선생님들도 뛰어나고 학교 안에서 동아리나 비교과 활동을 많이 한다. 토론수업도 자주 한다. 하지만 일반고는 그런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

글=이한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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