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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평양을 좁힌 부자의 「흑백 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진하디 진한 정이 하얀 돌과 검은 돌에 실려 태평양을 오간지 15년-.
비록 슬하를 떠났어도 그칠 줄 모르는「바둑 편지」는 어버이와 자식을 한 마음으로 묶어 놓았다.
바둑 판세는 1승1패 끝에 결승전으로 들어갔다.
7년3개월 전에 시작된 제3국은 이제 겨우 1백수로 중반전,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아들은 요즘 조그마한 전략을 짜고 있다. 이 한판을 언제까지나 끌어 건강이 성치않은 칠순아버지를 오래오래 살게 하겠다는 효심(?)을 숨기고 있다.
가장 먼 거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두어지고 있는 바둑의 맞상대는 3급의 아버지 상대식씨(70·서울 강서구 신월2동 오희연립주택가동205호)와 「뉴욕」의 아들 상전씨(44·5급).
서울대상대를 나와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던 아들 전씨는 15년 전인 65년4월「뉴욕시티·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떠났다.
당시 중앙대 학적과장이었던 상씨는 5남2녀의 맞이를 떠나보내면서 편지라도 자주 하라고 일렀다.
몇 차례의 편지를 보내고 나니『몸 성히 잘 지낸다』는 말밖에 새 소식이 궁해졌고 또 공부에 쫓기게 된 아들은 바둑편지를 궁리해냈다.
『오늘 학교 갔다가 오면서 생각한 것인데, 아버님께서 저와 지상바둑을 두시면서 가르쳐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제가 두 점을 놓겠습니다. 』 제1국은 65년10월27일 흑2점을 놓은 아들의 도전으로 시작됐다.
당시 아버지 상씨의 실력은 3급. 기꺼이 첫수(4의3)로 응전해 왔다.
이렇게 시작된 편지바둑은 70년1월25일까지 장장4년3개월 동안 걸려 백2백41수로 끝났다. 중반부터 판세가 다소유리해진 아들은 막바지에 이르러 슬그머니 물러나 효도를 할까도 생각했으나 그대로 밀어붙였다. 아들이 두 집을 이겼다.
그 동안 아버지는 바둑지도는 물론 집안소식을 시시콜콜이 전해왔다. 아들은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갔음을 보고했다.
첫판이 끝나자 곧 제2국이 시작됐다. 3년2개월 걸린 두 번째 판은 흑의 실착으로 1백22수만에 아들이 돌을 던졌다.
결승이랄수 있는 제3국은 73년5월21일 역시 아들의 도전으로 벌어졌다.
7년이 훨씬 지난 지난 7월19일 1백수가 두어졌으나 아들은 약간 몰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아버지도 『이판은 분명히 내가 이긴 판』이라고 기세가 대단하다. 78년 10월에 백98수가 두어진 뒤 2년 가까이 된 지난7윌1일에야 흑99수가 두어졌다.
『한 수 두는데 2년이나 끌어 흑이 워낙 비세(비세)인 이번 판을 포기한 줄 알았더니 바빠서 그랬던 모양』이라고 했다.
아들 전씨는 7월초 「카터」대통령으로부터 「소수민족 기업소유권에 관한 미대통령자문위원회」위원으로「아시아」계 미국인을 대표해 임명됐다.
아버지는 중앙대에서 교무과장·학적과장 등을 거쳐 도서관 열람과장으로 70년1윌 정년 퇴직한 뒤 71년10월까지 문중(목천 상씨)에서 세운 과천의 「상문중·고」초대교장을 지냈다.
체미 15년 동안 72년 딱 한번 귀국했던 전씨는 아버지를 곁에서 보시지 못함을 늘 죄스럽게 생각한다.
사는데 쫓기다보니 바둑상서도 자주 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빨리 끝낼 생각도 없다.
『앞으로도 7년은 더 걸리지 않겠느냐.』전씨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효도바둑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뉴욕=김재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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