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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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맥령』이라는 시가 있었다.
『보리 누름철은 해도 어이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솔을 열어보네』-.
작고시인 이영도의 노래다. 가난과 시름이 땀처럼 배어있다.
보리밥은 한 시절 우리네의 가난과 궁장의 상징이었다. 필경 6·25동난만 없었어도 보리밥이 그처럼 원망의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멀고도 험난한 피난길에서 보리밥 한술에 한숨과 눈물을 짖던 일은 아마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서울도심의 일각에「꽁보리밥」집이 생겨 성업중이라는 얘기는 새삼 격세의 느낌을 갖게한다. 보리밥이, 그것도 꽁보리밥이 이젠 시정인의 호사스러운(?)「메뉴」로 격상되었다는 말인지.
하긴 풋고추에, 토장을 곁들여먹는 보리밥은 그 나름으로 향토의 풍정도 없지 않다. 매끈하게 규격품처럼 조리된 음식이나 판에 박힌 매식에 식상한 도회지의 「셀러리맨」들에게 보리밥은 어딘지 전원의「무드」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현대인의 삶이란 토속에의 정취에 그만큼, 굶주려 있는 것도 같다.
보리는 그 어느 곡식보다도 원시적인 야수를 갖고있는 식물이다. 서양사람들이 즐겨 먹는「오트밀」의 원료인 귀리는 지금도 들길의 풀숲에서 볼 수 있다. 보리의 원조다.
식물의 역사를 보면 보리는 7천년전, 더 아득하게는 1만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원래는 동부「티베트」에서 야생하여 이것이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이식되었다. 일본의 보리는 역시 한국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보리가 널리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부터다.
흔히 「봄보리」·「가을보리」로 나누어 심는데, 「가을보리」는 추위에 약해 온대 중에서도 주로 남부에서만 재배된다.
우리나라의 보리는 「쌀보리」·「겉보리」·「맥주보리」가 있다. 겉보리는 북위39도선 이남(평균최저 영하11도C)에서 재배하며 쌀보리는 추위에 견디는 저항력이 약해 충청도 이남에서, 맥주보리는 전남·경남의 해안지대에 주로 심는다.
「올보리」와 같은 새 품종은 논에서 재배가 가능해 소출이 많다.
보리는 물론 밥으로도 먹지만, 과자를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인다. 향기가 좋고, 맛도 한결 구수한 것이다. 보리차는 이미 우리식생활의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한때 보리의 쓸모가 없어 가축의 먹이로 던져준 일이 있었다. 「꽁보리밥」집으로 다소 격상은 되었지만 달리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해 봄직도 하다. 영양가마저 높다는 얘기는 더 한층 구미를 돋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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