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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특별 취재반」|선진국의 과외·입시경쟁은 어떤가|"유치원에서 대학까지"|가정과 사회를 잇는 「제2의 집」|변모하는 서독 유치원 교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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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살짜리도 단체생활 익숙>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나의 친구 「베린다」, 생일을 축하해요. 』
2개의 작은 촛불로 불을 밝힌 생일「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어린이들과 선생님이 둥글게 둘러앉아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직 혀가 잘 돌지 않는 앳된 목소리들이지만 얼굴 표정들은 모두 진지하다.
이날은 금발의 새침데기「베린다」가 2번째 생일을 맞는 날-. 그래서 5명의 친구들과 함께 유치원에서 생일「파티」가 한참 벌어지고 있다. 이들 5명의 어린이는 생후 1년6개월부터 만3년에 이르는 나이들. 한국에서라면 아직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지만 이들은 벌써 단체 생일에 제법 익숙해져 있다.
옆방 작업실에서는 3∼5세 꼬마들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가며 흰 마분지에 울긋불긋 그림물감을 칠하고 털실과 색종이를 붙여 멋진「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작업실 넓은 유리창엔 이미 붉고 푸른 물감으로 어릿광대·꽃·동물들이 그려져 있고 천장은 오색풍선과 「테이프」로 화려하다.
『14일 (2월)이 「카니발」이예요. 난 「인디언」이 될 거예요.』
「에케」는 두 손에 가득 그림물감을 묻힌 채 울긋불긋한 「인디언」의 가면을 만들면서 무척 신이 나 있다. 벌써부터 엄마를 졸라 마련한 깃털장식의 「인디언」모자와 옷도 입고 있다.
푸른색 융단이 깔린 옆방 공작실에서는 국민학교3학년인「가이프」,4학년인「토마스」와「올로프」가 킬킬거리고 장난하면서 나무토막 쌓기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수업 끝나면 곧장 유치원에>
『낮12시에 학교가 끝나면 곧장 이곳에 와서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숙제도 할 수 있어 참 좋아요. 저녁 5시반이면 퇴근길에 엄마가 저를 데리러 와요』
은행원인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가이프」의 얘기다.
서독 「본」시의 한적한 주택가 「호프만」거리에 있는 아담한 2층 건물의「시립 어린이보호 유치원」(Stadt Kindergarten und Hort). 어린이들의 체격에 맞춰 만든 작은 책상과 의자들, 방마다 가득 쌓인 장난감들, 아늑하게 꾸민 낮잠 방과 체육실, 간식 마련을 위한 조리실 등 10여개의 방과 놀이터를 갖춘 이 어린이보호 유치원에는 80명의 어린이가 교사 17명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어린이들은 연령별로 생후 6개월부터 3세까지의 아기가 l5명, 3세부터 6세까지가 30명, 6세부터 12세까지의 국민학교 어린이가 35명. 이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5시3O분까지 문을 여는 이 유치원에서 낮 시간의 대부분을, 또는 방과후의 반나절을 보내고 있다.『최근 대부분의 서독 유치원에서는 어린이의 조기교육을 위한 전통적인 기능 이외에 직장여성의 자녀들을 돌봐 주는 일을 합니다. 갓난아기들에겐 우유를 먹여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큰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도 혼자 빈집에 들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점심도 먹여 주고 숙제도 거들어 주곤 하지요. 말하자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모든 어린이들을 도맡아 보살펴 주는 「제2의 집」 구실을 한답니다.

<적령아의 7o%이상이 취학>
그래서 명칭도 유치원이란 의미의 「킨데르가르텐」에 탁아와 보호란 뜻의「호르트」 (Hort)란 말을 덧붙이고 있다고「카린·바스무트」원장은 말했다. 이것은 주로 3세까지의 아기를 맡아 돌보는 종래의 탁아소(Krippe)와도 성격이 다른 보다 포괄적이며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어린이보호 유치원 어린이 중 약90%는 엄마가 직장에 나가는 경우이고 또. 약7O%는 이혼한 부모나 미혼모 등의 자녀로 부모 중 어느 한쪽하고만 사는 어린이들이다.
서독사회 전반에 걸친 노동인력의 부족과 해마다 높아만 가는 이혼을, 그리고 미혼모의 증가 등은 70년대에 들어와 여성의 직장진출을 크게 촉진했고, 이로 인해 어머니를 대신하여 어린이를 보살피고 교육시킬 기관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특히 직장 여성이 많은 대도시의 유치원들은 대부분 더 많은 연령층의 어린이를 돌볼 수 있도록 그 기능과 시설을 확대해 가고 있다고 「바스무트」원장은 최근 서독 유치원 교육의 새로운 변모현상을 설명했다.
79년 현재 서독에는 약2만5천개의 유치원이 있고 취학률은 적령기 어린이들의 7O%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베를린」대학의「치머」교수가 최근 발표했다.

<보육비는 수입 정도에 따라>
서독 유치원교육의 특징은 어린이의 욕구와 흥미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동기를 찾아 어린이와 교사가 자유롭고 융통성 있게「프로그램」을 운영해 나가는 데 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어린이들은 스스로 가정과 사회와의 연결을 배우고 자립심을 기른다.
한 예로 어린이들이 치과에 가기를 두려워할 경우 유치원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치과놀이를 하도록 유도, 한 어린이는 치과의사가 되고 한 어린이는 환자가 되게 하여 치과에 대한 공포감을 없애 준다. 서독의 유치원 교육은 아직 공교육화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보육비를 내야 한다. 하지만 그 액수는 부모의 수입정도에 따라 각기 다르다.
「본」시립 보호유치원의 경우는 4등급으로 나누어져 1등급은 한달에 30「마르크」(한화약 1만원), 2등급은 15「마르크」, 3등급은 7·5「마르크」, 4등급은 완전무료다. 그러나 이 돈은 유치원 유지경비의 3분의1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한다.
따라서 서독에서의 유치원 교육은 우리나라에서처럼 일부층의 값비싼 전유물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돼 있어 완전한 공교육이 올 날도 멀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글 박금옥 특파원
그림 양영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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