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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난민 50만명 남부 접경지역에 몰려 …"안 돌아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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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아기야 로스토프 주 도네츠크 시의 난민 캠프에 수용된 우크라이나 남동부 출신의 한 가족 모습. [리아 노보스티]

러시아 남부, 우크라이나 국경에 접한 로스토프로 최근 매일 2500~3500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몰려든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벌써 몇 달 째 몰려온 피난민이 50만 명이나 된다. 일부는 남부 지역 여러곳에 있는 난민 캠프로 들어갔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난민 수용소로 가기도 했다. 일부는 적당한 경로로 일자리를 찾고 거주지를 찾아가기도 한다.

로스토프 주지사 바실리 골루베프는 7월 중순 주요 외국 언론과의 만남에서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로운 시민이며 아이들과 여성들이다. 공격 받고 있는 고향을 달아나다시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는 ‘인도적 재앙’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난민 가운데 한명인 나탈리아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거기엔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우리의 삶을 부숴버렸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우크라이나와 연한 지역 그리고 전체 러시아의 이민 상황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미 난민 가운데 수 천 명은 재외동포 러시아 귀환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러시아 영주권을 얻을 가능성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특히 모스크바는 인종의 용광로이면서 심층 갈등이 부글거리는 곳이다. 그럼에도 정부나 민간의 관심은 적다.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는 현재 디아스포라를 돌아보게 만든다. 2010년 시행한 러시아 통계청의 최근 인구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엔 180개 이상의 민족이 산다. 러시아인이 77.1%, 타타르인이 3.7%, 우크라이나인 1.35% 순이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최소 40만 명을 넘는 러시아 거주 다수 민족은 22개이며 아제르바이잔인, 다게스탄인, 카바르다인, 야쿠티야인, 레즈긴인들이다.

지금도 러시아에는 구소련 지역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모스크비치 대다수는 화이트칼라 직종이나 소매업에서 일하고 있어 궂은 일은 대부분 이주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물론 이주자들이 더 번듯한 다른 직업들을 못 갖는 건 아니다. 본지 취재팀의 조사에 따르면 조지아 출신 보가텔리야 가족엔 성공한 외과의사들이 많다. 우즈벡 출신의 셰랄리 무사예프는 우즈벡 레스토랑의 주방장으로 자국 음식을 모스크비치들에게 선보인다.

이런 다민족 구조는 러시아 내에 민족 디아스포라(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러시아를 조국으로 여기는 이주민)를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하지만 많은 러시아인(인종적 러시아인뿐 아니라 러시아 국민 모두)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2013년 10월 모스크바 남부에서 일어난 근래 가장 심각한 민족 간 충돌인 비률료보 폭동이 일어났다. 2010년 12월 모스크바 인종 폭동 이후 더 커진 규모다. 충돌은 10일 새벽 여자친구와 귀가하던 러시아 청년 예고르 셰르바코프가 캅카스 출신으로 추정되는 청년에게 살해되면서 촉발됐다. 시위는 러시아 민족주의자와 프로축구 클럽 회원 등이 주도했다. ‘러시아인을 위한 러시아, 모스크바인을 위한 모스크바’라는 인종차별적 구호도 내걸렸다. 시위는 며칠 동안 계속됐고 경찰은 1000명 이상을 체포했다.

범죄 용의자로 아제르바이잔 출신 이주자 아르한 제이날로프가 지목됐다. 일간지 코메르산트가 전한 바로는 러시아 연방보안국이 아제르바이잔 이민자들을 ‘사업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한 후에야 제이날로프가 용의자라는 걸 밝혀냈다. 이 사건은 또다시 ‘러시아에 민족 디아스포라가 필요할까?’란 질문을 마주하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 러시아엔 이미 디아스포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 내 민족 간 관계를 좌우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이타르타스 통신의 미하일 구스만 제1 부사장은 “디아스포라는 러시아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있다. 뉴욕에는 거대한 차이나타운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부터 형성된 라틴계 및 한인 거주 구역이 있다. 주인과 직원이 모두 인도 사람인 약국 체인도 있다. 뉴욕 거리에서 채소와 과일 장사는 거의 한인이 잡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 디아스포라는 비교적 새로운 현상이다. 소련 시절에는 여러 민족이 같은 지역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살았다. 그런데 소련이 해체되자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외국인과 이주자가 되어버렸다. 구스만 부사장은 “우리는 이해심을 갖고 이성적으로 이 현상에 대처해야한다. 이주자들이 동향인과 소통하고 서로 지탱해주기 위해 비슷한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이해해야한다. 이들의 가게에서 민족 고유의 음식, 혹은 향신료, 옷을 사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 이해해야한다”고 말했다.

신분증에 민족명 없어요, 그냥 러시아 국민일 뿐이죠

음식은 민족 간 갈등 없이 우즈베키스탄인과 조지아인, 러시아인, 에스토니아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유일한 영역이다.

일요일이 되면 모스크바 북부에는 자원 봉사자들이 진행하는 일요 점심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민간의 민족화합을 위한 음식 문화 프로젝트다. 예전부터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돈을 벌고자 모스크바에 온 이민족이 서로 더 가까워지도록 돕자는 의도다.

시장도 그런 장소의 하나다. 15일 모스크바 남부 체료무스키 시장에 갔다. 다양한 민족의 얼굴과 이들 고유의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러시아인 특유의 오이 절임, 절인 배추, 유리병에 담긴 버섯, 절인 열매와 사과부터 말린 베르베리스(매자나무 열매)와 기름진 양고기, 중앙아시아식 볶음밥 플로프용 쌀까지 다 있다. 북방 민족이 먹는 생선 별식에서 뜨거운 조지아 빵 토르니스 푸리에서 떼어낸 바삭한 끄트머리도 보인다. 시장에서 만난 안나라는 이름의 중년 여성은 “러시아를 알고 싶다면 시장만 와 봐도 충분하답니다”라고 말한다. 모스크바의 시장엔 러시아 신분증을 발급받은 모든 민족들을 볼 수 있다. 러시아 신분증은 민족명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냥 러시아 국민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민족이 시장에 몰려 있어 민족 간 다툼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민족 간 다툼이 발생하면 사건을 자세히 파악하지 않고 자기 민족 사람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고 지적한다. 2013년 7월 말에는 한 경찰관이 시장에서 폭행 용의자를 체포하려다 캅카스인들에게 구타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의 캅카스인 중 경찰이 체포하려 한 이유를 알아보려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자기 사람’을 지키려고만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지적됐다. 수사 결과 체포 대상이었던 청년이 실제로도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범죄심리학자인 미하일 비노그라도프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일반 대중과 다른 폐쇄 집단을 보면 그 집단이 부정적이라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건 뒤 러시아 당국은 불법 이민자를 적발하고 유사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러시아 내 많은 시장·상점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다른 민족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와 수도 모스크바가 다민족 사회인데도 정작 많은 러시아 국민은 주위 민족들의 문화와 전통을 잘 모른다. 지난해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연방목적프로그램 ‘러시아인 단결 강화와 러시아 민족의 고유문화 발전’이 채택됐다. 그에 따라 러시아 국민이 러시아 거주 민족의 문화를 알게 장려하는 전시회와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정부는 러시아 내 타민족에 대한 관용 수준도 관심을 두고 점검할 계획이다.

엘레나 김, 마리나 오브라스코바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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