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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정치인… 선거 대비 조직 금방 할 수 있다|김대중씨 관동클럽 1문1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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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출생 이후 정치활동 시작까지의 신상명세를 말해 달라=전남 신안군 하의면이라는 한 섬의 중농 집안에서 태어나 거기서 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목포로 이사했다.
5년제 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군대에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
선박 회사를 경영하면서 건준에 참여했고 돈 좀 벌었기 때문에 한민당 목포시 지구당 간부도 지냈다. 그러던 중 서울에 출장 올라왔다가 「6·25」를 만났다.
서울에 있다가는 의용군에 끌려갈까 봐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고향에 내려가는데 군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공산군이 침입했다. 목포에 도착하니 집은 역산으로 빼앗겼고 집사람은 방공호에 피신하여 둘째 아들이 거기서 태어났다.
이틀 후 잡혀가서 2개월 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 해 9월28일 2백명이 처형되었는데 그 때 80명이 탈옥했다. 나도 그때 함께 나왔다.
그 후 목포일보 사장을 지내고 해상방위대 전남지구 부대장을 맡았는데 공비토벌과 치안 담당이었다.
▲이번 연설엔 「하나님」이란 말이 없는데 그것은『예수 동생「가십」』이 다시 나올까 봐 두려워서 그런 게 아닌가. 그리고 부인은 신교인데 당신은 구교이니 기독교 가정에선 비정상이 아닌가=국민 중 비기독교 신자가 많아서 하나님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그 말을 쓰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으로「하나님」이란 말을 오늘도 했다.
내가 「예수 형님」때문에 유명해졌는데 교리 상으로 아무 잘못이 없다. 대전「쿠르실리오」요에 들어갔을 때도 선생이『예수 형님』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서 그대로 하다가 야단맞은 셈이다.
56년 장면씨가 나의 대부가 되어「카톨릭」신자가 됐다.
집사람이 신교이지만 요새는 「이큐메니컬」(통합)운동이 일어나 신구양교뿐아니라 다른 종교와도 대화하고 있으니 결혼 20년이 되는 우리 부부는 「이큐메니컬」의 선구자인 셈이다. 세 자식 중 둘은「카톨릭」, 한 명은 신교라도 집에선 전연 문제가 안되고 있다.
▲대학의 정치연설에 잡음이 있는데 대학연설을 계속 하겠는가=초청하면 응할 것이며 학생을 상대로 정치연설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이다. 동국대에 사과한 일도 할 일도 없다.
▲여건이 분명해지면 출마 여부를 생각한다고 했는데 대권 도전을 포기하던가 여론 조성·동지규합 등 적극행동을 벌이던가 해야 하지 않는가=내 태도가 불분명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총각이라면 누구나 장가 갈 생각은 갖겠지만 고교생이 대학 졸업 후 자리가 잡히면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색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선거 있게 하는데 만 주력할 것이다. 나도 대통령 한번 해볼 생각 있다. 또 한다면 힘껏 할 것이다. 그러나 밥상도 안 차렸는데 숟가락 들고 먹겠다고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공화당의 18년 간 통치의 공과와 인민당 입당 포기 선언의 입장은 계속되는가=과거 자신 없고 고립됐던 국민들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고 일어서서 가능성과 능력을 발견해 국내외에서 눈부시게 발전한 것은 18년 통치의 공이다.
인민당에 대해서는 공개적 또는 사적으로 「10·26」 후의 시국을 낙관해서는 안되고 정국을 주도해야 한다는 내 의견을 밝혀 왔다. 그들은 지나치게 낙관해 왔다.
인민당은「10·26」의 주역도 자기이고 민주 세력의 구심점도 자기라고 한다. 이들과 뭉쳐 하나가 되려고 했으나 욕교반졸로 후보싸움같이 돼 진짜 할일도 못하게 될 것 같아졌다. 내가 몸을 빼야 서로 제정신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잘한 것 같다.
▲정국을 이끌어 나가야 할 인물이면 개헌 등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구미에 맞는 밥상」을 스스로 차려야 하지 않는가=대통령 면담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으며 만나면 정부 형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이완집정제가 나오면 이에 대해 물론 투쟁을 벌일 것이다. 요즘 하고 있는 연실, 성명발표 등이 그런 노력의 일환이며 폭력을 쓸 수 없으니 여론에 호소하는 것 아닌가.
▲개헌안이 확정된 후에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겠다고 했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대통령 선거 날짜만 잡힌다면 20,30년 간 정치를 해 온「프로」정치인이기 때문에 선거에 대비한 조직을 금방 할 수 있다. 신 총리가 출마를 안 한다고 했으니 약속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집체훈련은 학생과 군이 대학을 통해 해결했으면 좋겠고 선거권 인하문제는 답변할 지식이 없다.
▲앞으로 정치를 하려면 재야를 중심으로 급조신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라를 이끌고 갈 집행능력이 모자라는 재야의 취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정치의 요체는 정통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있다고 책에서 보았다.
과거에는 효율성에만 치중해 행정 독재가 되었다. 재야가 차기 정권의 중추가 된다면 민주 정통성은 확립될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차관이하의 공무원은 그대로 있어야 하고 장관이라도 유능하면서 반성을 하면 함께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옥중에서 읽은 책은 몇 권이나 되나=「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전필을 비롯해 이기백· 천관자씨의 역사책, 문학·철학·군사학 등의 책을 6백∼7백권 읽었다.「라인·홀트·니버」의『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하비·콕스」의 『세속도시』등을 감명 깊게 읽었다.
▲본래 성함은 「김대중」인데 언제 「김대중」으로 고쳤는가. 스스로 고쳤는가 작명가가 지었는가=조부가 김대중이라고 지었으나 시골이라서 호적사무가 제대로 안 돼 「중」자가 「중」으로 기재됐다. 잘못된 것을 알고서 54년에 내가「중」자로 호적정정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매번 선거에 떨어지고 사업도 망했다. 그런데 누가 그것은「중」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큰 대자에 적중한다는 중자가 얼마나 좋은 것인데 왜 적중하는 것을 스스로 막느냐는 것이었다.
마음이 약하다 보니 그 소리에 솔깃해져서 다시「중」자로 고쳤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됐겠으나 5·16이 났다.
항렬은 헌법위원회 위원장 김현철씨와 같은 「현」자이다. 김수로왕의 7O대 손이다.
▲대통령을 지망하는 세 김씨가 정치일정 등에 관해 미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속마음으로 바라면서도 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을까 봐 그러지 못한다고들 하는데 한국의 정치발전「스케줄」에 대한 미국의 역할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미국이나 일본 등 우방의 역할은 2차적인 것이며 1차적 역할은 우리 국민 스스로다. 미국이 우리 민주주의 발전을 지지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 질서와 안정을 지킬 수 있는 정도로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인들에게 한국민의 다수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할 뿐이다.
▲개인사무실 계약이 해약되는 등 박해를 받는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정치 문제와 관련돼 내가 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납치의 주모자라는 이후낙씨와 「10·26」이후에 만나 서로 양해했다는 소문이 있다는데=이씨로부터 수억을 받았다는 소문까지 듣고 있다. 그러나 만난 적도 연락한 적도 없다.
▲일본에 있을 때 조총련 주최강연에 참석했다는 소문이 있고 강연 당시 김일성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는 얘기가 있는데=내 정치 경력에 있어서 해방 직후 반년 동안 건준에 참여한 것 밖에는 사상적으로나 경력적으로 비난받을 바가 없다. 세간에 돌아다니는 소문은 다 거짓이다. 반정부 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나 대한민국을 해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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