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육 특별취재반」"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선진국 과외·입시 경쟁은 어떤가|현장 중심의 「생활 교육」을 익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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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 여러분 여기 붉은 선의 세모꼴 표지만이 있고 그 안에는 위로 향한 검정 화살표가 이를 가로지르는 직선과 함께 그려져 있지요? 이 교통 표지는 무엇을 뜻합니까? 『더 앞으로 나가지 말라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가까이에 장애물이 있거나 도로 상태가 나빠 계속 달리면 위험하다는 뜻이니까 이 표지가 붙여진 곳에서는 일단 멈추세요. 다음은 창 밖 도로 표지를 배웁시다.』 ·서독「본」근교에 자리잡은「본」청소년 교통 학교의 수업 광경-. 「본」시경 소속 교육담당 교통경찰관「바이스·퀼젠」씨가「파울·게바브트」의 국민(기초)학교 3년 생 두「클라스」의 어린이 34명을 대상으로 교통 표지를 가르치고 있다. 짙은「그린」색「재킷」과「베이지」색 바지의 교통경찰 정장 차림으로 교단에선「퀼젠」씨는 어느 국민학교 교사 못지 않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어린이들이 길을 걸을 때나 자전거를 탈 때 알아둬야 할 교통 표지와 교통 법규 등을 가르치고 있다.

<「교통 교육」을 정규 과목으로>
교실 오른쪽 벽에는 23종의 진짜 교통 표지만이 붙여져 있어「퀼젠」씨는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설명한다. 전면이 유리로 된 교실 왼쪽 창너머로는 실제의 거리를 축소시켜 놓은 깨끗한「아스팔트」길이 펼쳐져 있다. 각종 도로표지와 신호등이 설치된 이 실습장에는 가로수와 녹지대까지 마련돼 있다.
30분에 걸친 이론 교육이 끝나자「퀼젠」씨는 실습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교실 위 2층 망루로 올라가고, 어린이들은 밖으로 몰려 나가 큰 번호만을 앞에 붙인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는 방금 배운 교통 표지와 교통 규칙에 따라 거리를 달린다. 어린이들이 방향을 잘못 집거나 교통 규칙을 어길 경우 망루와 연결된 자전거의 「스피커」를 통해 일일이 방향이 지시되고 주의 사항이 전달된다.
「본」청소년 교통학교는 72년 서독 정부가 국민학교 교과목에 교통 교육을 정규 과목으로 편성함으로써 작년에 문을 연 현장 교육장인데 서독에서는 1천번째로 세워진 것이라 한다.
「본」시의 경우 교통 교육은 국민학교 3,4학년 어린이들이 매학기 8시간씩 받도록 되어 있는데 현장 실습은 1년에 2번씩. 그중 1회는 실습이고, 나머지 1회는 실기시험이다. 이들 어린이의 교통 교육을 위해「본」시경에만도 3O명의 경찰관이 배정되어 있다고 「퀼젠」씨는 얘기한다.

<어린이 윤화 해마다 줄어>
서독의 어린이들은 이렇게 현장중심의 철저한「산 교육」을 통해 그들이 실사회에서 부닥치게 될 여러 가지 문제들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교통 교육을 실시한 72년이래 다른 교통사고는 계속 는데 비해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률은 늘지 앉고 있다』는 것이 교통 학교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나온 여교사 「크리스타·보레」씨의 설명이다.
이 같이 철저한 생활 중심의 교육은 서독의 국민학교 교육과정 무엇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지난1월말「본」시에는20여년만에 큰비가 내린 데다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내려와 「라인」강이 범람, 도로가 유실되고 강변의 주택들이 물에 잠기는 등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이때「돔·호프」의 국민학교 3년 생 한반 어린이 18명은 담임교사의 인솔로 「라인」강변으로 견학을 나갔다.
선생님은 격하게 흐르는 강물과 유실된 다리 등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수력 발전에 이용되는 거대한 물의 힘과 수리 사업의 필요성 등을 설명했다. 생생한 현장확인을 통해 어린이 스스로가 물의 위력을 알고 그 유용성과 피해를 아울러 깨닫도록 하는 것이 바로「산 교육」인 것이다.
서독의 어린이들은 국민학교에 들어가면 우선 자기들이 살고 있는 마을 이름의 유래부터 배운다.「멜렘」이란 마을 이름은 옛날 이 지역이 풍차가 많았던 저습지였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라인」강변에 우뚝 솟은 바위산 「드라켄·펠츠」(용바위)밑의「지크프리트」거리는 신화 속의「지그프리트」왕자에서 유래된 것임을 배운다. 마을을 익힌 다음에는 거리의 공공건물을, 그리고 시 전체를…. 이런 식으로 관심의 폭을 넓혀 나가 국민학교 졸업반인 4학년이 되어야 비로소 전 독일의 지도를 펼치게 된다.

<먼저 내 고장 유래부터 배워>
생활중심으로 이뤄진 서독 국민학교 교육의 특징은 교과 시간배정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국민학교 교육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가르치는 곳이니 만큼 3R, 즉 글을 읽고 쓰고도 셈을 하는 능력을 키우는 국어는 1주 25시간의 수업 중 6시간, 산수는 5시간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간단한 생활 과학의 원리와 자연 현상 등을 배우는 이른바 「사하·쿤데」(Sach Kunde)시간도 이에 못지 않게 많아 주5시간 정도 배정되어 재봉틀 사용법·전기다리미의 원리 등을 배운다.
공작 시간에는 취미에 따라 남녀 구별 없이 목공일·요리, 뜨개질을 배운다.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전문적인 요리학교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 본격적인 요리실습도 한다. 서독의 국민학교 교사에게는「교육적」이란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어린이들의 흥미와 필요에 따라 어린이들을 가르칠 재량권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역사적 유물을 공부하기 위해 수시로 박물관을 찾을 수도 있고, 들꽃의 종류를 알아보기 위해 어린이들을 야외로 데리고 가기도 한다.
이렇게 철저한 생활중심의 교육을 실시하는 서독의 국민학교는 최종학년인 4학년이 되어도 낮1시면 수업이 끝나고, 숙제도 15분이면 충분히 해치울 수 있도록 하여 어린이들에게 학교공부로 인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 또한 한 학급 학생수가 20명 안팎인데다 국민학교 4년 간 가능한 한 담임교사를 바꾸지 않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 하나 하나의 환경과 능력·적성을 파악하여 지도할 수 있다.

<한 학급 20명, 숙제 거의 없어>
국민학교 4학년과정이 끝나면 어린이들은 담임교사가 판정한 적성과 능력에 따라 중등학교에 진학한다.
국민학교 교사에 대한 사회의 신뢰가 그만큼 깊고 또 교사들도 자신의 직책과 사명감에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한다.
이 같은 독일인의 합리적인 사고 방식 속에는 이른바「치맛바람」이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그러기 때문에 독일의 교육은 지식 위주가 아닌 생활교육·인간교육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글 이근양·박금옥특파원
사진 양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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