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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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봄날이었다.
공자가 자로·조석·각유·공서화 등 네 제자와 한담하다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은 평소에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을 개탄하고 있는데 만약에 뜻을 펴게 된다면 뭣을 하겠느냐?』
자로가 제일 먼저 대답하기를『저는 내우외충으로 시달리고 있는 소국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거기서 저는 백성에게 의와 용을 가르쳐 3년안에 사태를 호전시켜 보겠습니다.』
각유가 그 다음에 말하기를 『저는 더 작은 나라라도 좋습니다, 3년안에 예를 다 가르치기는 어렵겠지만 여유 있는 살림을 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다음엔 공서화가 대답했다. 『자신은 없지만 종묘의 제사나 제후의 모임에 예장해서 말단접대역이나 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이 조석의 차례였다. 『제 소망은 몹시 작습니다. 봄에 새로 맞춘 옷을 입고 교외로 소풍 나아갑니다. 그리고 젊은이, 애들과 어울려 냇가를 거닐면서 춘풍에 흥겨운 끝에 노래라도 부르다 돌아오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조석은 혹시 공자가 이맛살을 찌푸리지나 않나 하여 스승의 얼굴을 몰래 올려 봤다.
그러나 공자는 나직이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런 것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네』
「논어」속에 있는 얘기다. 공자도 결국은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봄은 공자마저도 흔들어 놓는다는 얘기일까.
그런 봄이 온 지도 오래 된다. 난데없이 우박이 쏟아지고 황사에 묻히고, 아무리 저녁 기온이 몇 도씩이나 떨어진다 해도 봄은 봄이다.
아지랑이가 피고, 개나리가 기고….그런 속에서 봄은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지금 봄을 느끼는 사람보다는 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꽃샘바람이 너무나도 매섭게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다L
거의 한 평생을 실업자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공자는 끝내 봄나들이 한번 못하고 말았다.
그에게는 큰 뜻이 있었다. 그게 이뤄지기 전에 한가하게 봄나들이한다는 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마음이 한가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공자 만한 대망이 없다. 그저 편안히 즐거운 나날을 보내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이 있을 뿐이다..
봄이 좋은 것은 꿈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얼었던 땅에서 새싹을 돋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사람들에게 포망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그런 봄이 온 지도 오래 된다. 봄이 오면 온갖 예쁜 꽃을 안겨 주겠다던 사람들도 지금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고
어디를 보나 투명치가 않다. 꽃 하나 보이지도 않는다. 이대로 그냥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으로 건너뛰는 것만 같다.
지금은 봄일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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