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씨는 왜 괘도를 바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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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야」란 대명사로 호칭되어 온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후보는 7일『재야세력과 신민당의 단일화는 좌절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복권 39일만에 다시 재야로 환원했다. 지난 3월1일 복권 후 첫 기자회견에서 김씨는 신민당의 즉각 복귀를 보류했다.『재야와 협의해 결정하겠다』는 것이 표면상의 명분이었다. 다시 말해 신민당 쪽에서 재야인사들의 입당조건을 먼저 구비해 놓으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입장은 내외양면에서 도전을 받아왔다.
표면적인 것은 입당유보는 당내 열세 때문이란 김영삼 총재 측의 비판이고, 내면적인 것은 그의 원내 지지 의원들의 간곡한 입당 권유.
이에 따라 그는 윤보선 고흥문 김재광씨 등 중재자들과의 접촉과정에서 신민당 복귀원칙을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김씨가 복당 원칙을 철회하면서 내세운 표면상의 명분은『신민당이 재야인사에 대한 적극적인 영입의사가 없다는 판단을 갖게 되었다』는 것.
예춘호 의원은 김씨를 대변해『유신체제 아래서 민주회복 운동을 벌여온 재야 인사들 중엔 김대중씨가 사정을 해도 정치하겠다고 선뜻 나설 사람이 많지 않은 터에 신민당이 재야 영입주장의 뜻을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심사 운운해 김씨의 결심이 앞당겨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사실 그의 복당 원칙이 표명되자 주변「재야」는 최근 강력한 입당거부의사를 김씨에게 밝혀 번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는 4일 김영삼 총재와 회담한 자리에서 ▲중앙 상무위의 영입 문제처리를 주시하며 ▲그 결과를 가지고 재야와 협의해 ▲당에 대한 재야 입장을 정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중앙 상무위의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중앙 상무위에서는 상대방 측의 의사가 김씨 측 주장을 지배하게 되어 회의에서 대결한다는 것은 패배만을 의미할 뿐이었다.
그는 그것을 가리켜『재야 영입추진이 불가능해진 실망스런 사태』라고 규정했고 이 같은 태도를 보고 김 총재 측은『중앙 상무위를 앞두고 당권파와 상무위원들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의 이날 선언은 거의『마지막「카드」』에 가까운 것으로 풀이된다. 예 의원 등 그의 측근까지도『이 발언 후 신민당에 입당한다는 일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발언의 의미를 신민당과의 몌별로 규정지었다.』
김씨 측, 특히 재야가 신민당 입당을 포기할 수 있는 데에는 그들 나름대로의「자신」이 뒷받침되고 있는 것 같다. ▲신민당은 현실 속에서 오염됐고 ▲김씨계가 당내에선 정치공백 때문에 열세지만 당 외에선 우세하며 ▲야당은 시국의 대변혁을 맞아 어차피 국민적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는 판단 등이다. 그렇다면 김씨가 신민당과의「흥정」으로 인해 계속「이미지」가 실추될 필요가 없지 않으냐는 게 최근 동교동 주변의 일관된 분위기였다.
그의 재야 원대복귀가 곧 신당을 의미한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김씨를 중심으로 한 신당 가능성은 높아졌다. 재야 세력의 정치적 의지와 정치여건의 변화가 김씨의 결심을 좌우할 것이며 그 시기는 계엄해제가 고비가 될 것이다.
신민당은 양분의 위기를 맞게되고 야세는 양분, 약화됨은 자명하다.
이런 판국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양 김씨의 정치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의지는 심판대에 오를지도 모른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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