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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전 육삼총장 공소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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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피고인은 본적지에서 정시영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47년 서울광신산업학교를 졸업, 48년 4월 육사 제5기생으로 졸업과 함께 육군소위로 임관됐다. 그 후 육군방첩부대장·제7사단장·육본기획관리참모부장·제3군단장·육사교장을 거쳐 77년12윌24일 제1군사령관으로 보직 근무중 78년 5월1일 육군대장으로 승진했다. 79년 2월1일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12월l3일 그직에서 해면됐다.
피고인은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주범인 전 중앙석보부장 김재규(1980년1월28일 육본 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미수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상고번계류중)와는 1962년께부터 알게되어 동향인으로서 친밀히 지내오고 있었으며 김재규가 고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이며 군 동기생으로서 상당히 총애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될 때 김재규의 천거에 힘입은바 있음을 알고 평소 고맙게 생각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26일 하오4시15분쯤 김재규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그 날 하오 6시35분쯤 서울 종로구 궁점동 소재 김재규의 중석부장 집무실에 도착, 그곳에서 전중앙타보부 제2차장보 김정섭을 만나 서로 초면인사를 나누고 김정섭으로부터 김재규가 대통령과 만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대기했다. 그러다 하오 7시10분쯤 김재규가 나타나 『각하와 만찬이 끝나는 대로 곧 돌아올 터이니 식사를 하면서 기다려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김정섭과 함께 집무실 옆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부산 및 마산사태를 비롯, 민심의 동향과 하사관주택건립문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별안간 20여발의 총성이 나고 곧 김재규가 피묵은 「와이셔츠 차림에 당황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면서 나타나 『총장 큰일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합시다』 라고 하면서 피고인의 팔을 잡아끌어 자신의 승용차에 태웠다. 하오7시45분쯤 궁정동 중석부장 집무실을 출발하여 「뉴내자·호텔」앞과 광화문을 거쳐 3·1 고가도로로 가는 도중에 김재규의 태도와 표정 및 언행 등으로 보아 만찬장소에서 대통령의 신변에 위급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하면서, 김재규에게 수차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김재규는 답변을 회피하다가 차중에서 대통령서거의 표시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가 밑으로 내리대면서 대통령의 서거를 피고인에게 알려줬다.
피고인은 김재규가 대통령과의 만찬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 것이며, 혹시 그 범인은 차지철이나 그의 하수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외부침입입니까, 내부소행입니까』라고 물었으나 김재규는 이에 대답하지 않고 다만 『큰일입니다. 김일성이가 알면 휴전선이 문제이고, 국내는 유혈사태가 발생될까 우려됩니다. 보안을 유지하고 빨리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라고만 말했다.
대통령의 시해범인·시해현장 및 사고경위 등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고 보안유지와 계엄선포만을 강조하므로 피고인은 다시 김재규에게 『내부겠지요 라고 대통령 측근의 범행이 아니냐는 취지로 물었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계엄선포를 했을 때 어느 부대가 출동할 수 있느냐, 국가의 장래가 정총장의 어깨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지고 계속하여 차를 타고 남산쪽으로 가다가 병력지휘장 육본으로 갈 것을 제의하여 육본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서울후암동소재 병무청 앞을 통과할 즈음 김재규가 사탕같은「검」(네모난계피「검」)1개를 주어 이를 받아먹으려다가 그 속에 약물이 들어있어 김재규에게 이용당하지나 않을까 의심, 「검」을 슬그머니 바닥에 버렸다. 하오8시5분쯤 육본에 도착하여 김재규와 차에 동승했던 김정섭 및 김재규의 수행비서관 박흥주 등을 총장실로 안내하여 대기하도록 하고 상황실로 가서 계엄선포를 위해 국방장관·합참의장·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등 군 수뇌들을 전화로 비상 소집했다.
전군에 비상발령을 하고, 계엄군의 서울 진주를 위해 육군 ○○부대의 출동을 지시한 뒤 대통령시해범인이 각하의 측근이라면 청와대 내부의 소행인지 또는 김재규의 소행인지를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부대에 이상 없느냐, 병력은 모두 장악하고 있느냐』라고 물어 그로부터 『아무 이상없다』는 대답을 듣자 순간적으로 청와대 내부의 소행은 아니고 김재규의 범행임을 확신하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규는 현직 중앙타보부장으로서 막강한 조직과 권력이 있고 반드시 그 배후에는 방대한 추종세력이 관련되었을 것이며, 대통령 시해후에는 나라의 실권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이에 동조하는 것만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믿은 나머지, 위 김재규가 수괴로서 국회를 문란할 목적으로 대통령을 살해하고 육본으로 가서 중앙정보부의 조직력과 권한을 이용하여 군부를 장악, 무력으로써 내란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김재규의 범행을 돕기 위하여 1, 이날 하오 8시25분쯤 동상황실을 나와 총장실로 가서 하등의 보고의무가 없는 김재규에게 그의 범행을 돕고있다는 표시로 계엄을 위한 군수뇌소집사실 및 병력출동상황을 보고하는 한편, 계엄에 관한 김재규의 계획을 확인하기위해 『계엄부대가 출동하게되면 어디를 먼저 점령해야 됩니까』라고 물어 동석한 위 김정섭으로부터 ○○○둥이라는 답변을 듣고 이를 「메모」했으며, 2, 이날 하오 8시30분쯤 그곳에 도착한 당시 국방장관 우재현으로부터 『무슨 일이냐』 는 질문을 받고 그간의 상황에 대하여 상세히 보고할 의무가 있음에도 『각하가 만찬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자세한 것은 김부장에게 물어 보십시오』라고만 답변함으로써 김재규의 범행일체를 은폐했고, 3, 이날 하오 8시40분쯤 김재규의 신변을 보호할 의도로 대통령시해범인 체포를 위한 청와대경호실의 출동을 저지하기 위해, 그곳에 도착한 수도경비사령관에게 청와대포위를 지시했다. 수경사령관이 『청와대를 근접포위하면 층돌 우려가 있으므로 원거리 포위가 좋겠습니다.』 라고 건의하자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뒤 하오 9시쯤에는 당시 청와대 경호실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호실 병력을 철저히 단속하고 수도경비사령관에게 청와대주변에 병력을 배치토록 지시하였으니 충돌이 없도록 직접 수도경비사령관과 협조하라』고 지시했으며, 4, 이날 하오 9시20분쯤 이미 출동을 지시했던 육군 ○○부대와 ××부대가 통행금지시간 이전에 서울에 진주하여 갑작스런 군의출동으로 국민들의 동요가 있으면 김재규의 범행에 장애가 될 것으로 판단, 병력출동을 중지하도록 당시 육군참모차장에게 지시했고, 5, 이날 하오9시30분쯤 국무총리·내무 및 법무장관·전 대통령비서실장 김계원 등이 그곳에 도착, 총장실에서 김재규 등과 합석하자 김재규는 『각하의 서거사실을 3일간 보안유지하고 빨리 계엄을 선포하자』고 주장했고 국무위원들은 보안유지가 곤란하다고 반대하는 등 논의를 하다가 「국무회의는 하오 11시 국방장관실에서 개최하고 계엄은 다음날 새벽 4시를 기하여 선포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국무위원들이 국방장관실로 이동하고 난뒤 같은 날 하오11시30분쯤 국무회의의 동정을 알고자 국방장관실로 가다가 김계원을 만나 그의 요청으로 그 옆방인 국방장관 보좌관실로 가서 국방장관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로부터『각하를 시해한 범인이 김재규다』 라는 말을 들은 국방장관이 체포지시를 하므로 하는 수 없이 김재규의 신변을 일단 확보하되 사태의 추이를 계속살펴보기로 하고 육본「벙커」로 돌아와 헌병감과 보안사령관에게 『김재규를 시내에 있는 안가에 정중히 모시라』고 지시하여 김재규의 신병안전을 도모했다.
그 다음날인 27일, 0시40분쯤 총장실에서 수계원으로부터 사건현장에서 범인으로부터 빼앗았다는 「리벌버」권총 1점을 제출받으면서도 김재규의 범행과 그 배후세력의 거사진행을 도와주기 위해 사건현장의 위치와 상황·범행경위·배후세력 등을 조사하여 신속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가 이날 상오 1시쯤 보안사령관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임에 틀림없으니 조사해야겠다』는 보고를 받고 비로소 조사지시를 하는 등 수괴로서 내란행위를 하다가 미수에 그쳐 김재규의 범행을 방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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